제 19 장. 갈보리
7. 강도의 죽음
예수님께서는 혼자 죽으신 것이 아니었다.
아마 예수님의 양편 십자가에 강도를 매달게 한 것은
더 이상의 조롱과 모욕을 주려고 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의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그 행위에는 특이한 적절함이 있었다.
예수님은 평생 동안 죄인들의 친구이셨으며 죽음의 자리에서도 그들과 떨어져 있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그 아들을 불러 세상의 구주가 되게 하셨을 때
하나님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과 멸망하는 영혼들의 수치를 끊을 수 없게끔 연결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연결하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는 두 행악자가 십자가들이 세워졌다(눅 23:33).
이와같이 여러 세기의 시선을 모으게 된 이르없는 이 두 사람은 누구였는가?
아마 그들은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상기시켜 주듯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횡행하던 자들과 같은 난폭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폭도[바라바]의 동료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라바]가 주도했던 혁명 운동은 처음에는 애국적인 열심으로 로마 통치에 대항했으나
그후 약탈과 살인,범죄 집단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서 죽어가던 두 강도는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서 풍겨오는 그 무엇이 그중 하나를 잠잠하게 했다.
그 무서운 고통을 신음소리 내지 않고 견디며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도
이상하리만큼 고귀한 왕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이 사람은 그 수족에 못을 박는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 강도는 그 맑고 사랑이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별안간 저 깊은 곳에서부터 믿음이 솟구쳐 올랐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바로 마지막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고 화려한 의식이나 예식도 없었던 그 때에 단 한사람,
죽음이 임박한 때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그가 왕좌에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왕적 위엄에 대한 놀라운 찬사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가 생명을 바쳐 선포하려고 하신 진리, 즉
고통과 결박에 얽매여 희망이 없는 어떤 영혼이라도 일순간에 티끌이나 잿더미같은 生에서부터
바로 사죄로 말미암은 완전한 해방에로 나아갈 수 있으며
성도의 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진리에 최종적인 印을 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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