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장. 갈보리
자원하여 드린 희생
우리가 지난 두 장에서 살핀대로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인 세력들의 연합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으셨다. 교회와 국가 그리고 민중이 모두 그를 죽이기 위해 연합했다. 바리새인들의 무지와 관용 없는 데도,[가야바]에게서 예시된 제사장들의 배타성과 이기주의,[빌라도]에게서 구체화 된 로마 제국의 정책과 힘,예루살렘의 폭도들에게서 나타난 민중의 좌절감과 노여움 그리고 원한,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세력들이 최종적인 결정 요인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세력에 밀려서 죽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패배하지 않은 영혼의 자유의사로 그 길을 가셨다. 갈보리에서 죽으신 분은 잔인한 환경의 절망적인 희생 제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약이 시종일관 주장하는대로 그 희생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이 대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영혼을 자원하여 제단에 바치셨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주려 함이라]고 하셨다(막 10:45).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고 하셨다(요10;18).물론 예수님의 죽음에는 어떤 필연적인 요소가 있다.
즉 그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죽임을 당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9:22).그러나 그 필연성은 폭력이나 억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그의 애타는 사랑에 의한 필연성이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그 댓가를 충분히 아시고 기꺼이 수락하심으로 구속 사업을 떠맡으셨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하셨던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를 재판하던 자들이 스스로 그를 상황의 지배자로 또한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로 상상했던 것 만큼 사실에서 동떨어진 것은 없다. 갈릴리 사역 당시부터 삶과 환경과 모든 새로이 닥치는 위험을 극복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악의의 채찍에 의해서, 또는 운명의 수레 바퀴에 어쩔 수 없이 끌려서가 아니라 그의 완성된 사업의 영광을 취하시려고 자발적으로 승리감에 차서 나아가셨던 순간에 최고의 정복자가 되셨다. 이것이 바로 "사람보다 강한 하나님의 약한 것이었다(고전 1:25).
십자가의 거치는 것
여기에서 우리는 고대 세계에서 십자가 형벌이 어떤 뜻을 가진 것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기독교는 십자가에 아름다운 후광을 둘러 놓았다. 우리는 교회를 십자가 형태로 건축하며 국기에다 십자가 문장을 넣기도 한다. 죽은 자를 매장한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우기도 한다. 우리는 붉은 십자가를 만들어 의료 사업의 상징으로 삼기도 한다.
시인들이나 찬송가 작가들은 [놀라운 십자가]나 복된 십자가]에 대해 노래로 들려 준다.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 하여금 십자가가 본래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의 형벌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게 해서는 안된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다(갈3:13,신21:23).
이것이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었다. 로마인들의 느낌 역시 이것과 마찬가지였다. [형벌 중에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다]라고 거의 공포의 전률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무서운 말들로써 [키케로]는 진술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결코 이런 형벌이 로마 시민의 몸에, 그들의 생각이나 눈에 뜨는 귀에도 가까이 오게 되지 않기를!"하고 기원했다.
동양의 半야만적인 국가에서 최초로 고안된 십자가 형벌은 로마인들에 의해 노예나 가장 파렴치한 범죄자에 대한 형벌로써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극에 달한 치욕의 죽음이었다. 고대 세계 사람들에게 그것은 교수대의 밧줄과 같은 것이었다. 최초의 사도들이 세계적인 복음 전도를 시작했을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사도들이 당면해야 했던 한 가지 선입견,즉 거치는 돌인 십자가의 장애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갈5:11,고전 23).
메시야가 죽어야 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가 그러한 죽음을 당해야 했다는 것은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했다. 그리스도의 손길이 닿은 것마다 - 십자가를 포함해서 - 광채와 아름다움으로 장식되고 변모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무섭고 깊은 구렁에서 십자가를 높이 들어 세우셨는가를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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