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역동성 |
“미련한 자는 죄를 우습게 여겨도 정직한 자는 은혜를 입느니라”(잠14:9)
우리는 죄 하면 무엇보다 먼저 벌을 연상합니다. 죄와 벌은 옛 언약의 원리를 대표하는 상관 개념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죄를 말할 때 무엇보다 먼저 함께 다루어져야 할 개념이 은혜입니다. 죄의 해답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죄책과 싸우는 인생은 은혜를 경험하기까지는 죄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죄와의 진지한 직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은혜를 만나기를 구하지만 죄를 대면하기는 싫어합니다. 우리의 방어기제는 죄를 시인하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속의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에 급할 뿐입니다. 우리는 죄라는 단어 대신 연약함, 실수, 약점, 판단의 착오 등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잠언은 피상적으로 죄를 대면하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자기 합리화는 자신의 감정을 이완시켜 자신을 기분 좋게 할 수는 있으나 진정한 해방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고통을 이완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마약 복용과 같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환자는 마약으로 일시적 해결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장직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죄를 부끄러워하며 심판자이신 주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임을 알고 심판대 앞에 자신을 벌거벗는 사람에게 주는 의의 옷을 입혀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역동성인 것입니다.
기도
자비의 주님,
우리로 죄를 피하지 말게 하시고 은혜의 역동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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