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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사랑20. - Herman Hesse.

Joyfule 2012. 9. 14. 04:22
 
  
 지(知)와 사랑20.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자네는 이미 알고 있겠지?"
원장이 나르치스에게 물었다.
"골드문트 말씀입니까? 네, 원장 선생님. 지금 막 병이 났는지 다쳤는지 
실신해 있는 것을 업어 왔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회랑에 쓰러져 있는 걸 내가 발견했지. 
그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못 찾을 텐데. 다치지는 않았어. 기절했지. 좋지 않은 일이야. 
이 일에는 자네도 틀림없이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뭔가를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되네만. 그는 자네와는 절친한 사이니까 말일세. 
그래서 자네를 보자고 한 걸세. 무슨 말이든 좀 해보게나."
나르치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억제한 태도와 말로써 
골드문트와의 오늘 있었던 대하 내용, 또 그것이 골드문트에게 
예상 외로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쳐주는가에 대해서 간단히 들려주었다. 
원장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이상한 대화였군."
  원장은 말을 하면서도 억지로 진정하려고 애썼다.
  "자네 설명을 들어보니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한 간섭이라고도 할 수 있네. 
영혼의 구제에 대한 대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네. 
하지만 자네는 골드문트의 영혼 구제자가 아닐세. 
아니, 무엇보다 자네는 영혼 구제자가 아니네. 아직 성직을 받고 있지 않단 말일세. 
영혼 구제를 맡아 보는 성직자에게만 관계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조언자로 학생과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었는가? 
결과는 보다시피 좋지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이지 않는가?"
 "원장 선생님."
  나르치스는 부드러운 말씨로 그러나 명확하게 말했다.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 심한 충격을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서 저도 퍽 놀랐습니다. 
우리들의 대화의 결과가 골드문트를 위해서 좋은 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결과는 곧 알게 되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네의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일세. 
어떤 이유로 자네는 골드문트와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
 "알고 계시겠지만 그는 제 친구입니다. 그에게 특별히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그를 특히 잘 이해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그에 대한 저의 태도를 영혼 구제자라 하십니다. 
저는 성직자의 권위를 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제가 더 잘 그를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원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의 특별한 재능에 대해선 나도 잘 알고 있네만, 
자네가 한 행동이 나쁜 결과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골드문트는 병이 난 건가? 
혹시 어디가 아프다거나 허약한 게 아닌가 하는 거야.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가? 그것도 아니면 어디 특별한 통증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닙니다. 오늘까지 건강한 몸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병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지금 성욕과의 싸움을 시작할 그런 나이니까요."
  "내가 알기로는 열입골일 텐데?
  "열여덟입니다."
  "열여덟. 그렇군. 충분히 그럴 나이지.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스런 싸움이야. 
그러니 그의 영혼이 병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네."
  "아닙니다, 선생님. 그것만이 아닙니다. 
골드문트는 벌써 오랫동안 영혼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싸움은 다른 사람보다도 그에게 있어서는 훨씬 위험한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는 과거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래? 어떤 부분이란 말인가?"
  "그의 어머니와 관계된 모든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거기에 병의 원인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골드문트 자신이 어머니를 일찍 잃었다는 것 외에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 가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그 모든 것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도 아름답고 재간덩어리인 개성이 남다른 아들을 둘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의 이런 일체의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징조에서 추론한 데 불과합니다."
 원장은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보다 좀 우월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하고 비웃으며 이 사건 전체를 귀찮게 여기고 있었으나 차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원장은 골드문트의 아버지, 
어느 정도 허식이 심하고 신뢰감이 가지 않는 그 사나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비로소 그 남자가 
골드문트의 어머니에 대해서 암시한 몇 마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여자는 자신에게 치욕스런 행동을 하고 도망쳐 버렸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의 마음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어머니한테서 이어받았을지도 모르는 악덕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해서 소년은 어머니가 저지른 죄악이 보상을 위해서 
한평생을 하느님한테 바칠 결심을 한 것 같다. 
그 사나이는 그런 말을 했었다.
원장은 오늘처럼 나르치스에게 혐오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생각 깊은 젊은이는 얼마나 훌륭한 추측을 내린 것일까! 
사실 얼마나 자세하게 골드문트를 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