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23.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5
지금까지 골드문트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것들을 조금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가운데서 들은 것에 불과했다.
어머니의 모습은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 있는 것이 없다.
어머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몇 개 있기는 했으나
그 대부분은 그를 나르치스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라는 것은,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무엇이었다.
수치스런 일이었다. 어머니는 댄서였다.
품위는 있었으나 좋지 못한 이교도 출신의 아름답고 야성적인 여인이었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그 여인을 가난과 굴욕 속에서 구출해 주었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 여인이 이교도인지 아닌지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종교를 갖게 했다.
그러고는 결혼식을 하고 존경을 받을 만한 여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얌전하게 질서 있는 생활을 꾸려갔으나
지난 날의 생활 습관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음인지 추문을 일으킨다.
남자들을 유혹한다, 며칠 혹은 몇 주일씩 집을 비운다, 무서운 여인이다,
하는 소문이 퍼지더니 몇 번이나 남편한테 붙들려 왔다가 끝내는 영영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어머니의 소문은 그 후에도 계속 사라질 줄을 몰랐다.
악평은 혜성의 꼬리와도 같이 하늘거리다가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 여인의 남편은 불안과 공포, 치욕과 놀라움으로 시달리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안정을 회복했다.
그러고는 배반한 여자를 대신해서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아들의 모습은 그 어머니를 무척이나 닮았다.
아버지는 슬픔으로 몸은 초췌했지만 마음은 이전보다 경건해졌다.
그는 아들 골드문트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죄악을 보상하기 위해
일생을 하느님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행방을 감춘 아내에 대해서 말하기를 싫어했지만
언제나 대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골드문트를 떠맡길 때 원장도 암시를 준 내용이었다.
아들은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런 이야기들은 아직도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버지나 하인들의 이야기,
어둡고 욕된 소문에서 된 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말하지만 그 자신의 어머니, 실제의 어머니,
체험한 어머니에의 추억을 그는 아주 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습이, 그가 아주 어릴 때의 별이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 그 영상을 잊어버릴 수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골드문트가 친구한테 말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만큼 무조건적으로 열렬히 사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있어 태양이며 달이었습니다.
내 영혼 속에 빛나는 그 모습이 어떻게 점점 희미해져갔고
끝내는 형태없는 매춘녀처럼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여러 해 전부 터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에게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 후 얼마 안 되어 나르치스는 수습 수사 기간을 마치고 법의를 입게 되었다.
골드문트에 대한 그의 태도는 두드러지게 달라졌다.
골드문트는 전에는 나르치스의 주의나 조언에 대해
귀찮은 지식이나 행동의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했으나,
요전의 커다란 체험 이래로 친구의 예지에 대해 흠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친구의 말 중에서 얼마나 많은 말이 예언과도 같이 실현되었던가!
이 통찰력 있는 인간은 얼마나 깊이 그의 생활의 비밀이나
그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정확하게 추측했던가!
얼마나 영리하게 그의 병을 고쳐 주었던가!
그 이후로 소년은 완쾌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의 기절은 나쁜 결과를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골드문트의 태도 속에 있던 일종의 유희적이며 건방지고 또한 불순한 점과
어느 정도 조숙해 보이는 수사다운 태도,
아주 특별한 예배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는 신념은 마치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소년은 자기 자신의 길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한층 더
젊어지는 동시에 점잖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이 나르치스 덕택이었다.
그러나 나르치스는 며칠 전부터 그의 친구에 대해서 특별하게 신중한 태도를 갖기 시작했다.
골드문트는 그를 매우 흠모하고 있는데도 나르치스는 대단히 겸손하게
그전처럼 사람을 깔보는 듯하고 가르치는 듯한 태도를 친구에게 보이지 않았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자신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힘을
보이지 않는 원천에서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힘의 성장을 촉진시켜 줄 수는 있었으나 거기에 참견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자기의 지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그는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한편으로는 슬펐다.
그는 어떤 단계를 뛰어넘는, 언젠가는 벗어버려야 할 껍질 같은 것을 느꼈다.
지금도 그는 골드문트에 대해서 골드문트 자신이 그 자신을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골드문트는 자신의 혼을 재차 발견하고 그의 부름에 따라갈 준비는 되어 있었어도
그것에 의해서 어디로 이끌려갈지 아직 예상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르치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힘이 없었다.
사랑하는 친구의 길은 나르치스 자신이 결코 밟고 들어가지 않을 나라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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