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40.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그는 부인들한테 즐겨 배웠고 어느 여자나 무엇 하나쯤은 그에게 남겨 주었다.
몸짓, 독특한 키스, 독특한 기교, 혹은 몸을 맡기거나 사리는 독특한 방법 등....
골드문트는 그 어느 경우에도 응해 주었다.
싫증내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어떤 유혹도 받아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비로소 그 자신도 유혹적이 되었다.
그의 외모만으로는 부인들을 그다지도 쉽게 유혹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것은 순진한 행동, 공개적인 행동, 욕망의 거리낌 없는 천진성,
여자가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든
그것에 대해서 언제든지 응하는 마음의 준비, 그런 것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애인 하나하나가 그에게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해주었다.
어느 여인한테는 부드럽고 조심성 있게,
다른 여인한테는 재빨리 또한 집어삼킬 듯이,
어느 때는 처음 여자를 안 소년과도 같이,
또 어느 때는 노련한 경험자처럼.
그는 유희와 싸움, 탄식, 그리고 웃음과 수줍음,
뻔뻔스러움도 자유 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절대로 여자가 원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모든 여성이 재빨리 그이 마음속에서 낚아채는 소재였고
그 여성들에게 호감을 가져다주는 사나이로 만든 것이다.
그는 짧은 시기에 수많은 사랑의 형태와 사랑의 기교를 배웠다.
수많은 애인에게서 경험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방법까지 배웠다.
어떤 종류의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는 민감한 귀를 갖게 되었으며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벌써 그 여자의 사랑의 능력과 종류,
범위를 정확히 알아맞출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머리가 목 위에서 어떠한 형태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가,
무릎이 어떠한 모양으로 움직이는가,
그는 그 무한한 갖가지 모양들을 새로운 황홀감을 갖고 관찰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손가락을 더듬어
여자의 털의 종류를 하나하나 구별해 내는 방법도 배웠다.
그런 것에 그의 방랑 생활의 의미가 있으며
그 때문에 이 여자에게 저 여자로 편력을 하며
인식과 구별의 능력을 섬세하고 더욱 다양하고 깊게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라고
그는 오래 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대개의 악사들이 한 가지 악기뿐만 아니라
세 가지나 네 가지 혹은 더 많은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어디에 쓰이고 어디에 연결 되는가 하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는 다만 자신의 행로 위에 서 있다는 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라틴 어나 논리학에 어느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 하지만
그 능력과 재능이 놀라울 정도로 특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과 여자와의 행위에서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고생하지 않고 쉽게 배우고,
뭐든 잊어버리지 않고 저절로 경험이 쌓여지고 정리가 되었다.
방랑 생활을 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골드문트는 아름답고 멋진 두 딸을 가진 어느 유복한 기사의 저택에 이르렀다.
때는 이른 가을이어서 밤이 되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을 겪은 바 있어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겨울의 방랑 생활은 어려웠다.
기사의 저택에 이르러 그는 식사와 잠자리를 청했다.
모두 그를 정중히 맞아주었다.
나그네가 학문을 한 사람이요, 그리스 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사는 그를 하인들의 식탁에서 옮기도록 분부하고 정중하게 대접했다.
딸들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그중 언니 리디아는 열여덟 살이었고,
동생 율리에는 열여섯 살이었다.
이튿날 골드문트는 길을 떠나려고 했다.
그 아름다운 두 아가씨 중에서 누구도 손에 넣을 가망이 없을 뿐더러
그를 붙잡아 둘 만한 다른 어떤 여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침 식사 후 기사가 그를 옆에 앉게 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그를 방안으로 안내한 노기사는
학문이나 책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취향에 대해 젊은이에게 점잖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모은 책으로 가득한 조금만 책장, 일부러 만들어 놓은 책상,
책상 위의 종이와 양피지 꾸러미 등을 보여 주었다.
골드문트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경건한 기사는
젊었을 땐 학교에 다닌 일이 있었으나 그 후에는
계속 전쟁과 세속적인 생활에 몸을 바치다가 결국 중병에 걸려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순례길에 나섬으로써 젊은 시절의 죄악을 참회했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갔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잡은 텅텅 비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 후 고향에서 결혼을 했으나 부인을 잃은 뒤에는
딸들의 양육에만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어 그 옛날
자신의 순례 행각의 자세한 보고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몇 장을 적어 나갔지만--젊은이에게 고백한 것에 의하면--
라틴 어 실력이 부족해서 여러 가지로 막히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 골트문트가 지금까지 쓴 그의 글을 정서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를 도와준다면 새 의복과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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