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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새하던 날 / 김현성

Joyfule 2015. 11. 16. 19:48
[2015 동양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한옥 호텔] 대청마루에 앉아 체크인, 조식은 코리안 스타일로

 푸새하던 날 / 김현성

 

쌀로 풀을 만든다. 풀풀 끓어 넘치는 바람에 냄비뚜껑을 열어젖혔다. 하얀 김 한바탕 쏟아내더니 거품이 폴싹 주저앉은 사이로 쌀 알갱이가 그대로 보인다. 모양새가 또렷한 것으로 보아 좀 더 시간을 두어야 푹 퍼져 뭉그러진 풀이 될 성싶다. 올여름 처음 푸새하는 날.


 해마다 여름이 되면 손수 푸새할 것을 고집하는 게 있다. 직접 내 손으로 옷에 풀물을 먹이는 것은 떨어내지 못한 마음속의 그리움 때문이리. 푸새하는 풀물 속에는 어릴 적의 정갈하게 쪽진 어머니의 모습이 있고 성미가 까탈스러운 할아버지가 계시다.


 고향 집의 너른 대청마루에 다소곳이 앉아 푸새한 것을 손질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떠오른다. 입에 가득 물을 물었다가 ‘푸’하고 내뿜은 물안개로 버석거리는 이불 홑청을 다스리며 이렇게 해야 홑청이 밟기 편하며 다듬이 발이 잘 받는다고 일러주셨던 생활의 지혜도 생생하다. 이불 홑청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면 어느새 나는 어머니처럼 다소곳해지고 홑청 솔기를 맞잡은 손에 힘이 주어진다. 일렁일렁하며 두 마음을 조율하던 맞당김은 어린 내게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 하나를 깨우쳐줬다.


 푸새한 옷은 꿉꿉할 때 옷 솔기를 펴고 매만져야 모양이 바로 잡힌다. 어머니는 착착 개켜서 빨래 보에 싼 뒤 꼭꼭 밟아 숯 다리미로 다림질하셨다. 할아버지의 모시옷은 이렇듯 언제나 정성스런 어머니의 손품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고달픈 세월로 결하나 구겨짐 없이 모시옷을 손질해 놓고는 오로지 시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만을 기다리는 여인네 같았다.


 할아버지의 모시옷은 섬세함이 살아 있는 듯 올올이 흐트러짐 없이 또렷한 결이 보였다. 성품조차 대쪽같이 올곧으니 모시옷 입은 모습에서 꼿꼿한 기품과 자존의 힘이 더욱 풍겼다. 속에 입은 옷까지 훤히 비치는, 투명하다 싶은 고의와 적삼이거늘 가벼이 뵈지 않고 오히려 고결한 기품으로 느껴짐은 웬일일까.


 여름만 되면 늘 할아버지는 고고한 모시옷 차림으로, 사랑채 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입에 물고 시조 가락을 읊으셨다. 모시옷과 곰방대, 시조 가락과 매미울음, 이글거리는 태양과 나무그늘이 아주 잘 어울렸다. 통풍성과 땀 흡수력이 뛰어나고 질감이 까슬까슬한 모시옷을 입으신 할아버지의 고결한 자태는 그야말로 자연과의 환상적인 어울림이요 퍽 매력적이었다.


 광목으로 만든 자루에 뭉크러진 풀을 쏟아 부었다. 좀 되직하다 싶어 물을 조금 더 넣고 처음에는 조몰락거렸다. ‘남편에게 할아버지와 같은 고결한 멋을 연출하리라.’란 야무진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 바락바락 치대고 치댔다. 뽀얗고 걸쭉한 풀물에서 아주 끈적대는 점성이 느껴졌다.


 남편의 모시 적삼과 바지를 넣고서 조물조물 풀물을 먹여 빨래 건조대에 널었다. 모시로 만든 내 생활 한복과 목수(면직 바탕에 수놓은) 원피스, 색 모시 조각을 조화롭게 이어 붙여 만든 블라우스와 빨간 꽃무늬가 다문다문 있는 인조 블라우스, 푸새할 수 있는 옷은 죄다 풀물을 들였다. 푸새하여 널고 있는 두 팔 사이로 남실바람이 간질이며 스쳐 간다. 옷들이 제멋을 살려 뽐낼 자태 생각으로 가슴이 설렌다.


 우리네 삶도 빨래를 푸새하는 일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노력이라는 인생의 푸새를 잘한 사람은 삶이 순탄하고 나름 품격 있게 잘 사는데, 푸새한 듯 만 듯 노력을 게을리 한 사람의 삶은 구겨짐이 보인다. 풀물이라고 다 옷을 빳빳하게 하지 못한다. 풀의 재료와 옷의 재질, 그리고 끈끈한 점성의 농도가 빳빳함을 결정하듯, 무작정 노력한다고 우리네 삶이 폼 나는 게 아니라 슬기와 지혜를 담은 노력에 따라 삶이 풍요롭게 되는 게 아닐는지.


 내 삶은 풀 끓이는 일부터 꼬였다. 어찌 된 마음인지 부탁을 받으면 거절은커녕 내가 꼭 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잘 든다. 귀가 하도 여려서 솔깃한 남의 말을 분간 못 하고 빠져 낭패를 보았다. 말하자면 인생의 풀물이 될 재료부터 시원찮은 셈이다.


 풀물이 시원찮으니 삶의 푸새도 엉망이 되었다. 서툰 솜씨로 쉬기도 하고 농도가 너무 옅어 구겨진 삶이었다. 친구건 지인이건 돈을 꾸어달라면 수중에 있는 것만 주고 멈추었어도 그리 큰 손실은 막았을 것을 남의 돈까지 끌어다 주었다. 쉰 뜨물 켜듯 남편이 날 바라보아도 깨닫지 못한 참으로 어리석은 삶의 푸새였다.


 한 때는 기품이 있는 귀부인 같이 살고 싶은 열망도 있었거늘 그만 와르르 무너졌다. 잘못한 인생의 푸새 덕분으로 남의 돈 갚기에 바빠 식탁에 김치만 올리고 먹던 가슴 먹먹한 시절을 무엇이 좋아 추억하겠는가. 한 번도 아닌 세 차례나 되는 그 푸새는 할 수만 있다면 맑은 물에 바락바락 주물러 풀물을 우려내 버리고 싶다. 아니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우고도 싶다.


 구겨진 빨래를 다리미로 다려서 모양을 내듯 엉망이 된 인생에 다리미질한다. 힘들기는 했지만, 내 인생을 한층 성숙하게 단련한 훈련이라고 애써 마음을 위로한다. 미혹을 적절히 끊을 줄 알고, 고난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힘을 갖게 한 내 인생의 푸새를 되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젠 빨래를 푸새하는 것도, 인생에 풀물을 먹이는 일도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고나 할까.


 장작개비처럼 말라버린 옷들을 빨래 건조대에서 거뒀다. 서걱거리는 빨래에 어머니처럼 입에 불룩하게 물을 물고 뿜어본다. 불편하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뿌려본다. 그도 불편하다. 분무기로 물을 뿜으니 여간 편하게 아니다. 어머니의 방식이 아무리 좋아도 고집할 수가 없는 노릇이라 문명의 편리함을 선택했다.


 손질한 빨래를 보자기에 싸서 남편 앞으로 슬쩍 밀어 놨다. “어렸을 때 해 봤어. 빨래 잡아당기다 뒷방아도 찧은걸.” 공감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우리 부부의 일기도는 맑음인데 자근자근 빨래를 밟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심사로 투영되는 남편의 모습은 왜 이리 측은해 보이는가.


 정년퇴직하여 집에서 칩거하는 남편의 어깨가 힘 빠져 보인다. 무슨 일을 선뜻 나서서 하기를 꺼려하는 눈치다. 자신감도 조금씩 소멸하여 위축되는 듯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 같아 속상하다. 남편을 작아지게 만든 것이 모두 내 탓인 듯싶어 후회막급이다. 오만 가지 마음이 겹쳐온다.


 다리미대를 거실로 끌어다 내놓고 푸새한 빨래의 다림질을 시작했다. 먼저 풋풋한 쌀밥 냄새가 나는 남편의 모시적삼을 다리미대 위에 펼쳤다. 물기가 알맞은 푸새 덕분에 모시의 날줄과 씨줄의 날이 빳빳하게 서 기품이 넘친다. 정성을 다해 솔기마다 꼼꼼히 하는 다림질로 모양새가 반듯해진 고의적삼처럼 우리 집의 만사가 순조롭게 이루어 질 것만 같다.


 주일이 기다려진다. 푸새한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고 드리는 미사의 아름다운 정경을 그린다. 가실가실한 올과 올을 통하여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촉감을 느끼는 꼿꼿한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