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기근
김요한 선교사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절)
풍요 속의 빈곤, 군중 속의 고독, 홍수 속의 샘물 등의 말을 많이 들어 온 우립니다.
글로벌은 국가의 울타리를 헐고
인류가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려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힘 있는 자는 다 먹고 없는 자는 쓰러지는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짙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는 무한경쟁에 의한 경제전쟁의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했습니다.
이로써 우정도 평화도 그 말 자체의 의미는 이젠 사라졌습니다.
오직 자신들에게 유익이 있나 없나 살필 뿐입니다.
계산 빠른 금융꾼들이 한정된 재화 안에서 땀은 후진국 사람들이 흘리고
결재할 돈만 들고 카드놀이 하다가 사고를 터뜨렸습니다.
결국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사고수습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실물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자기들 마음대로 판돈을 올려 흥청대다가
실체도 없는 거래에 의한 빚만 잔뜩 지워 놓고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온 세계가 기근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영적인 것의 그림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책과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원래의 뜻은 감추어두고
인간이 첨가한 조미료로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어놨습니다.
어쩜 카지노에 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판돈 속에 푹 빠져 들고 말듯이
부풀려진 축복 론,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에 대한 아름다운 카드놀이를 실컷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론의 홍수에 의해 하나님은 감추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고나면 율법이며 토라를 외우고, 성전을 제 집같이 드나들지만
의식화(儀式化)되어 그 말씀을 청종하고 지켜 의식화(意識化)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하나님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기근이며 전쟁이며 질병입니다.
지금은 그 보다 낫습니까?
교회가 많아서, 방송이 다양해서, 인터넷에 말씀이 넘쳐서,
책들이 많아서 말씀이 풍성해졌나요?
언젠가 한 동료가 제 원고를 출판사에 제출했더니
요즘은 팔릴만한 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말하더랍니다.
저는 애초에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미국에 갔을 때에 한 신학교의 도서관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거긴 책들이 우리처럼 차례대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보기에 좋도록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습니다.
몇 권이나 되느냐고 물었지요,
2천권, 아니 고작 2,000권뿐이라니 나도 2,000권은 가지고 있는데...
그 다음 귓전을 때리는 소리 ‘우리 도서관은 쓰레기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 가진 책들을 신학생들에게 다 나누어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안 되는 말씀은 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 예컨대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하는 말도
생명의 근원을 알려주지 않으면 거짓말입니다.
이런 말이 유통되고 있음은 영적기근의 증거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듣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도가 세상의 풍조에 비틀거리지 않고 살아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