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과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의 비밀'(막4:11)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비유란 주님의 말씀의 핵심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고안된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뽑아낸 이야기이다. 이 핵심 진리가 천국의 '비밀'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로마서 16:25-26을 보면 '비밀'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알 수 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롬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롬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즉 영원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구원의 섭리가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에게 알려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비밀'이다. 다시 말해 구약성서에 나타나지 않았던 천국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地上使役) 가운데 마침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비밀'이 무엇인가? 다니엘서는 천국 도래(天國到來)에 대한 전형적인 예언서이다.
"(단2: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단2:32)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단2:33)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단2:34) 또 왕이 보신 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단2: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이 성구에 대한 해석은 다니엘서 2장 44, 45절에 있다.
"(단2:44)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2: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이 구절들을 보면 예언자들은 장차 영광스런 천국의 도래할 한 날을 고대(苦待)하고 있었으며 그 때에 하나님은 지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구약적인 관점에서 천국 도래는 위대한 단 한 사건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役事)로 인간 세계의 사악한 모든 통치를 일거(一擧)에 쓸어버리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의(義)로 충만하게 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구약적 개념에서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였다.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리고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두가지 세례를 베풀게 되는데, 하나는 성령세례로서 천국의 메시야적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 세례로서 최후 심판의 불(마3:11)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다.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이 말씀은 다음 구절, 12절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마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여기 "꺼지지 않는 불"은 종말론적인 심판을 뜻한다. 요한이 감옥에 있을때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어 "오실 그 이"가 정말 예수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할지를 물었다. 이는 요한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예수의 메시야됨을 의심해서 한 말이 아니다.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실하다.
"(마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요한이 품었던 문제는 자신이 선포했던 예수께서 메시야같이 역사(役事)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성령 세례와 악한 자에 대한 불 세례가 어디에 나타나고 있었는가?
"(마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요한은 왜 이같은 질문을 했을까? 그 이유는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를 지배했고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 진주했으며, 권력이 이방인 로마 사람 빌라도의 손아귀에 있었다. 우상숭배와 다신 주의(多神主義), 그리고 부도덕의 로마가 철권(鐵權)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 요한의 문제가 있었다. 이는 모든 신실한 유대인,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인간됨과 그의 사역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였다. 죄와 죄인들이 여전히 심판과 형벌을 받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을 가져올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마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천국이 여기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밀이 있다. 천국에 관한 새 계시가 있다. 천국이 여기 있으나 인간 통치를 파멸시키는 대신에 천국은 사탄의 통치를 공격한 것이다.
천국이 여기 있으나 천국은 겉으로 드러난 모든 정치적 질서를 변화시키는 대신에 영적 질서와 인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비밀이며 하나님께서 맨 먼저 그의 구원의 역사에 드러내신 진리다.
천국은 두 단계로 역사할 것이다. 천국은 다니엘이 예언한 형태로 도래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인간 통치를 대신할 것이다. 세상은 권능으로 임하는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밀', '새 계시'는 바로 그 천국이 지금 여기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으나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지금 인간 통치를 파괴시키지는 않고 있다. 천국이 지금 세상에서 죄를 없애지 않고 있다. 천국이 지금 요한이 선포한 불 세례를 주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조용히 그리고 비밀히 임하고 있다.
천국은 영적인 영역에서 지금 하나님의 통치의 축복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사탄과 죄의 세력에서 사람들을 구원시키고 있다. 천국은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선물이다. 천국은 권능보다는 오히려 설득(說得)으로 '지금 여기에' 임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이 천국의 비밀, 즉 권능과 영광 가운데 임할 천국이 이 악한 세대에 천국의 축복들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형태로, 실제 사람들 가운데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비유는 네 종류의 토양에 대한 비유이다.
"(마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13:4) 뿌릴 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마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에 대한 해석은 18절-23절에 있다.
"(마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요컨대 천국이 사람들 가운데 임하였으나 그것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똑같은 경우로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약 성서만을 알았던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이다.
천국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능 가운데 죄와 사탄과 사망 권세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임할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국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꺼운 마음과 복종하는 뜻을 가지고 천국의 부름에 응답하여야만 한다. 하나님은 억지로 사람들을 그의 나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천국복음 선포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사(大使)로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것이지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 천국 복음이 생활 속에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열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거절할 수 있다. 천국 복음을 박차 버리고 그 복음 선포자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제 불능일 뿐이다. 다음 비유는 가라지 비유로서 천국복음의 또 다른 일면을 설명하고 있다.
"(마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마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에 대한 해석은 37절-42절에 있다.
"(마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마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13: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기서 분명 예수께서 "밭은 세상"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밭을 교회라고 해석하여 교회 안에 좋은 씨와 가라지, 중생한 자와 중생치 못한 자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교회의 혼합된 특성이 아니라, 세상의 혼합된 특성이다.
"(마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이 비유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천국이 이 세상 가운데 이미 역사하고 있으나 죄와 악한 세상을 없애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받아들인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세상 끝날 까지 세상에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 끝날에 가서야 오직 분리하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구약 성서만을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것이 놀라운 비밀이었으며 선포였다.
천국에 대한 비유 가운데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천국의 임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겨자씨는 극히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상징이다.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비유는 천국이 사람들 가운데 임하고 있으나 가시적(可視的)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겨자씨만큼 아주 작고 하찮으며 적은 모습이지만 현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천국이다. 겨자씨와 같이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여도 여전히 천국임이 중요한 사실이다. 때문에 "천국이 하찮아 보인다고 해서 네 자신이 속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실망하지 마라. 때가 되면 나물보다 커서 큰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게 되느리라." (마13:32) 이 겨자씨 비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의 점진적인 성장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비유에 담긴 진리는 성장이 아니다. 이 비유에는 천국이 장차 어떻게 올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 이 비유의 유일한 진리는 천국이 지금 여기 사람들 가운데 임했으나 전혀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작고 하찮은 겨자씨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적고 하찮아 보여도 천국이기 때문에 경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똑같은 진리를 설명하고 있는 누룩의 비유를 보자.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 비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이 누룩이 지닌 특성처럼 점진적 영향력을 가지고 온 세상을 점령할 것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누룩을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교회에 대한 배교(背敎)로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들은 그릇된 것이다. 겨자씨 비유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한줌의 누룩과 같다는 것이다. 천국은 가루 서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데 거의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누룩과 같다는 것이다. 세상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천국은 지극히 작고 천한 모습으로, 그리고 오직 12명의 제자만을 두고, 결국 십자가에 죽어야만 하는 그런 모습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역사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경력을 거의 언급치 않았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세계적 관점에서 예수의 인격과 경력 그리고 그의 선교는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 때문에 속지 않도록 하라. 언젠가는 가루 서말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처럼 온 세상이 천국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누룩을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성경 거의 대부분에서 누룩을 악의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 사실이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구절인 출애굽기 12장 39절을 보자.
"(출12:39) 그들이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발교되지 않은 무교병을 구운 것은 단지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23: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레23: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레23: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레23: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오순절에 유교병 떡 두 개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도록 했다. 오순절은 추수감사절기로 즐거워하는 절기이다. 이때 감사 제물로는 보통 집에서 쓰던 유교병 두 개를 곡식 추수의 첫 열매로 바쳤다. 이 절기에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쁨과 감사의 상징으로 누룩 사용이 명령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룩의 비유에서 누룩은 악의 상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천국은 누룩과 같이 적고 하찮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천국을 경멸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갈릴리 목수와 12명의 제자들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놀라지 말라! 때가 이르면 누룩이 가루 서말 전부를 부풀게 한 것처럼 천국이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될 수 없는 것이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의 비유(마 13:44-46)가 논리적으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에 이어 나오고 있다. 천국이 겨자씨와 누룩과 같이 비록 작고 적으며 하찮은 모습일지라도 바로 천국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가치를 아는 자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인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그 밭"을 샀고, "그 진주"를 샀다고 해서 구원을 사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20장 1절-16절에서 천국은 노력의 보상이 아니라 선물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은혜스런 선물일지라도 아주 값비싼 것이어서 땅에 있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야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라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때로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해야만 한다.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러나 천국은 어떤 댓가와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소유할만한 "감추인 보화"요, "값비싼 진주"와 같은 것이다.
이제 마가복음에서만 볼 수 있는 천국의 비밀에 대한 중요한 비유를 살펴보자.
"(막4: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막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이 비유는 겨자씨 비유와 마찬가지로 성장 요소에 이야기의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비유는 단 한가지 근본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즉,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천국은 이 한 가지 점에서 "씨"와 같다. "씨"는 그 자체에 생명을 지니고 있다. 농부에게는 그 "씨"가 지닌 생명에 도움을 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농부는 씨를 자라게 할 수 없으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씨를 뿌리는 것뿐이다. 농부가 씨를 뿌린 후 다른 여러 가지 일에 바쁘고 잠자고 있을 동안일지라도 씨 속에 있는 생명과 땅에 있는 지력(地力)은 스스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의 기적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인간은 결코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천국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천국의 실재적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 열매는 인간의 노력이나 기술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그 자체에 지닌 생명력으로 열매를 맺는다. 즉 열매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행위이다.
천국의 비밀은 바로 이렇다! 추수 때, 세상 끝 이전에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기 위해, 그리고 천국의 생명과 축복들을 베풀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역사(歷史) 가운데 오셨다(incarnation). 그런데 보이지 않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며 갈릴리 목수로 오셨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여전히 전 세계에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천국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역사(役事) 없이 들내지 않으며 겸손히 하찮은 모습으로 임하고 있다. 마치 땅에 뿌려진 씨처럼 소리없이 임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강팍하게 천국이 거절될 수도 있고 질식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 생명이 시들어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천국은 현존하여 사람들 가운데 신적(神的) 생명의 기적을 가져오고 있다. 천국은 하나님 통치의 축복들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그 마음 속에 "부활의 씨"가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볼 때 불신자와 다 같아 보여도 그리고 하찮아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승리 가운데 재림하실 때 믿는 자들은 그 "부활의 씨"로 말미암아 생명(영생)으로, 믿지 않은 자들은 사망과 영벌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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