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천국과 영생과의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고자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이 누리는 육체적인 생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생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의 생명이다. 제3장 천국의 현재성에서 살폈듯이, 천국이 현재임하고 있으며 영생은 그 천국, '오는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영생 또한 이 악한 세대에 소유하고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16절-25절을 보자.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마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 대 (마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여기서 영생, 생명, 천국, 하나님 나라, 구원등 이 모든 용어가 다 같은 의미로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미래에 속한 것들이다. 생명은 본래 미래에 속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후서 5장 1절-4절에서 언급한 그의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몸과 영혼의 전인적(全人的)인 부활로 바로 영생을 말하는 것이다. 영생은 몸과 영혼의 구원을 말한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다(고전15:50)는 것은 혈과 육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 모두 생명의 선물을 받았을지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죽어가고 있으며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죽을 것이 생명에서 삼킨바 되면"(고후5:4) 다시는 병과 고통과 죽음이 전혀 없게 되며 의사도 병원도 모두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영생은 구원을, 몸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영생의 미래성이 요한 계시록 22장 1절-2절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계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 말씀은 완전한 생명의 실현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이다. 생명수의 강물을 마시고 다시는 죽지 않는다.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으므로 다시는 병들고 썩고 고통 당하며 비참하게 죽지 않게 된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의미의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3절을 살펴보자.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다시 저주가 없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계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육과 죄의 장벽이 모두 깨끗이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완전한 친교, 하나님 사랑의 충만한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께 속할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안에 완전히 성취되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생명, 영생이며 천국의 생명이다. 생명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를 보자.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세상 끝, 미래에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주시고자 오셨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의 영생은 아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병과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영생을 어떻게 미래와 동시에 현재에 누릴 수 있는가? 이는 중생함으로(요3:5), 거듭남으로서 미래의 생명을 '지금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 속하였지만 '지금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영생이란 무엇인가? 첫째,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 '아는 것'(knowledge)은 경험을 뜻한다. '아는 것'은 인격적 관계, 친분 관계를 뜻한다. 어느 누구를 안다고 하는 것은 그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 친분을 나누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사도신경, 주기도문 등을 외우고 성구 몇절을 암송하며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외운다고 해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될 수 없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친교, 하나님과의 친분 관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 바로 영생인 것이다.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이 구절은 천국에서의 완전한 하나님과의 친분관계, 완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 즉 영광스러운 천국의 생명을 의미한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렘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렘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구는 천국에서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 3절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약속이 아니다. 부분적이나마 영생(하나님을 아는 것)을 '지금 여기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여러가지 교리와 학설, 교파가 생기는 것도 하나님에 대해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의 은사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모든 은사보다 월등한 성령의 은사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완전한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천국은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이 완전한 사랑을 성령의 은사를 통해 부분적이나마 어느정도 '지금 여기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불완전하나 오는 세상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고 해서 말씀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주여, 당신의 말씀을 공부했으나 저는 단지 부분적으로 알뿐이며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영생의 둘째 의미는 성령의 내주(內住)이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천국의 생명은 성령의 역사이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여기 '신령한 몸'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령한 몸'이란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생명과 힘을 공급받는 몸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몸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우리의 기업'은 완전한 생명, 몸의 완전한 구원, 죽을 몸이 권능과 영광스러운, 그야말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 이 기업을 약속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고전15:42-50, 고후5:1-10, 엡1:14).
그러면 '보증'이란 무엇인가? 먼저 보증은 계약금을 의미한다. 계약금을 치르게 되면 부분적이지만 실제적인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잔액 전부를 치루지 않았지만 이전 소유권자와 함께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성령의 소유는 계약금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소유)이 되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소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약금으로 즉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이다. 성령의 내주는 영생에 대한 계약금, 보증인 것이다. 중생은 천국 생명의 시작이고 부분적이지만 실제적인 것이다. 중생은 이미 우리 안에 천국의 생명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똑같은 진리를 다른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로마서 8장 22절-23절을 보자.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과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함께 고통 당하지만 언젠가는, 즉 영광스런 예수 그리스도 재림 시에는 완전한 몸으로 피조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 이 '처음 익은 열매'란 무엇인가? 첫 열매는 열매들이 익어가기 시작할 때 맨 먼저 맺는 것으로 이때는 추수기가 아니라 추수기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생명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미래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이 '너희 가운데 있다.' 미래에 속한 영생이 '지금 여기에' 실재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의 친교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정규적으로 예배드리며 성찬식을 통해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지며,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며 봉사하고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친분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천국생명의 생활이요, '신령한 몸'으로 사는 것이다. 천국생명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으니 성령으로 항상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삶을 역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몰트만의 표현대로 "삶의 영"이다(Der Geist des Leb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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