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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입니까?

Joyfule 2009. 4. 1. 23:40
 
김지성목회칼럼  -  보입니까? 

직업에 따라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병리학적 관점에서 사람을 구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사람을 구분할 때 ‘건강과 질병’의 기준으로 사람에게 접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가는 ‘표의 획득’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로부터 한표를 획득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유권자로 밖에 대할 수 없습니다.  
비지니스맨에게 있어 사람은 ‘구매자’로 보일 것입니다.  
자신이 판매하려고 하는 상품과 사람들이 당연히 아이템과 구매자의 관계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은 사람에게 ‘범법자이거나 비범법자’의 관점을 적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은 ‘축복의 대상’으로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라 함은 ‘복을 베푸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푸는 능력을 입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을 ‘축복의 대상’으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매카니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함 없이 “그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존재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사람 때문에 환희와 감동을 누리다가도, 
사람 때문에 힘들어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이해하기 보다 이해받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은 절대 그리 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는 더 높은 도덕관과 윤리관을 요구하는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는 한량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잣대를 들이대는 존재가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매카니즘 때문에 사람을  ‘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여간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품어야 할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망설이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대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안경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안경을 착용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이 가려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국 사랑하고 싸매어야 할 존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축복의 대상’으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을 나눌 수 있는 모습으로 세워질 수 있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 서른다섯의 나이에 도전했던 담임목회의 현장은 감동과 아픔이 어우러진 ‘산고’의 자리였습니다.  
열달을 가득 채운 생명을 출산하는 일은 분명 아픔을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동시에 산고를 경험하는 산모는 태어날 생명체를 생각하며 기쁨으로 그 고통을 감내합니다.  
그리고 산모는 마침내 오랜 진통끝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생명탄생의 환희를 고스란히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생명탄생의 환희를 맛볼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은혜의 안경을 착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은혜의 안경을 씌웠기 대문입니다.  
은혜의 안경을 착용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관점에서 사람이 보입니다. 
 ‘내가 축복을 베풀어야 할 존재’,  ‘내가 열심으로 사랑해야 할 존재’로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리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이되, 내가 보는 모든 사람들이 축복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축복을 나누길 소망하며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