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에 무지하다면 죽은 영혼이다.
필자의 아내의 고향은 봄이면 아름다운 벚꽃 가로수로 유명한 섬진강가의 하동이다. 뒤로는 지리산이 자리 잡고 있고 앞으로는 남해로 나가는 포구가 있으니 이보다 더 정겨운 고향이 없다. 아내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울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어렸을 때 놀았던 추억을 잊을 리가 없다. 그래서 필자도 아내를 따라 두어 번 다녀왔다. 아내의 고향마을의 이름은 잿골이다. 재란 고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마을 뒤로 하동으로 나가는 고개의 이름이 쇠고개이다. 이 쇠고개의 정상에 오르면 퇴역한 장갑차와 대포가 함께 한국동란 전쟁기념비가 전시되어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그 유명한 하동전투가 벌어진 곳이 바로 잿골마을 뒤의 국도변이다. 그래서 하동전투에 대해 알려드리겠다. 하동 전투는 한국 전쟁 초기 진주 전투와 함께 채병덕장군이 이끄는 영남지구 편성관구 사령부가 미 제 24사단의 일부병력과 협동하여, 호남의 남안선을 거쳐 하동의 우회침공하는 북한군 제 6사단을 요격하여, 진주를 잃기까지의 7일간의 지연전을 일컫는다.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적 대대병력과 전투를 벌였으나 대패하였다. 그 이유는 적의 위치나 병력 등의 정보에 대해 무지하여서, 이미 국군이 후퇴한 줄을 모르고 하동에 들어온 국군과 미군들이 무자비하게 살상되었다. 이 전투에서 채병덕소장이 전사하였으며 미군도 수백 명의 전사자가 생겼다. 고향마을에 사시던 처 외숙모의 전언에 의하면, 당시에 죽은 미군들의 시체가 길과 언덕에 얼마나 널려있는지 밟고 지나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시신을 모아서 묻어두었는데, 전쟁이 끝나서 미군들이 와서 가져갔다고 한다. 이처럼 적의 정보에 대해 깜깜하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이는 영적 전쟁이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영적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솔직히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영적 전쟁에 무지한 우리네 교인들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위의 구절처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귀신들로 이루어진 악한 영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권세를 잡고 사람들의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여 포로로 잡아 지옥 불에 던져지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과 피터지게 싸워 승리하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악한 영들과 피터지게 싸워 승리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이 영적전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한국동란 때 일어난 전투를 소개해주는 전쟁기념비를 읽듯이, 성경책에서 이들에 대해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게 전부이다. 그렇다면 귀신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영혼과 생명을 공격하여 사냥하는가? 바로 죄를 짓게 하여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 그래서 죄를 짓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사이를 끊어 놓기만 하면 사람들은 귀신들이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죄란 ‘하마르티아’라는 헬라어로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한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일컫는 단어이다. 그런데 ‘죄를 짓다’라는 헬라어는 ‘페이라죠’이다. 그런데 ‘페이라죠’라는 단어는 시험과 유혹이라는 두 가지 뜻을 공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천국에 들이는 믿음의 척도를 재는 시험으로 보고 계시고, 악한 영의 입장에서 보면 죄를 유혹해서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시험에는 하나님이 깊숙이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29:9,10)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6:8~12)
기이하게도 여호와께서는 깊이 잠들게 하는 미혹의 영을 보내서,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는 거짓선지자를 보내어 미혹을 허락하게 하셨다는 대목이다. 이 의중을 밝히 말하는 대목이 바로 에스겔에게 하신 명령이다. 패역한 백성들에게 눈을 어둡게 하고 귀를 가리어서, 그들이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포하신다. 이런 투의 말씀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만 배워왔던 우리네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구절이 아닌가? 하나님은 사탄과 귀신들의 미혹을 허락해서, 천국에 들일 백성과 지옥에 던져질 백성들을 구분하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악한 영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10)
위의 구절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실 때의 일이다. 그런데 광야에 가신 이유가, 성령에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고 밝히고 있다. 성령께서 마귀에게 유혹하도록 허락하셨다는 대목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예수님의 영적 능력을 시험하거나 영적 내공을 쌓기 위해서인가? 예수님이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있기는 하셨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런데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들에게 마귀의 유혹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악한 군대의 우두머리인 사탄을 불러들이고 하나님의 군대의 수장인 예수님께서, 직접 일대일로 맞장을 뜨고 싸우시면서 이들의 전략을 드러내셔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마귀는 어떻게 공격하는가? 당신이 그간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어 목을 물어뜯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는가? 아니다. 사탄은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이 유혹의 실체를 하나하나 뜯어보자.
맨 처음의 유혹은 배를 곯아가며 금식을 하지 말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러한 능력이 있지 않느냐고 부추기고 있다. 마귀의 공격을 초점은 두 가지이다.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것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 의를 드러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 주의하시라. 마귀는 육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관심을 두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두 번째 사탄은 거룩한 성에 데려다가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편말씀을 인용하여 속삭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를 세우고 자기 영광을 누리라는 유혹이다. 우리네 교회에도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전도행위, 그동안 드린 헌금 등을 잣대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 감사해서가 아닌 모든 생각은 죄다 사악한 죄이다.
세 번째는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다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사탄의 제안은 허풍이 아니다. 그는 세상의 권세를 쥐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교회에 와서 부와 성공을 꿈꾸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목회자는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부와 명예를 얻는 목회성공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이룬 목회자들은 엄청난 종교기업(?)을 자식에게 세습하고 있다. 교인들도 기도하는 목록을 들어보라. 죄다 세상의 부와 명예와 영광이다. 이런 세속적인 교인들은 조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이처럼 성경은 성경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죄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귀신의 자식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그게 사악한 죄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축복받은 증거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권리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건을 기록한 성경에서 사탄의 유혹을 찾아보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2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요6:70)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1~23)
위의 두 사건은 12제자들인 베드로와 가룟유다에게 접근한 사탄의 유혹이다. 사탄은 예수님의 사역에 실망한 가룟유다에게, 스승을 팔아서 돈이라도 벌라는 생각을 넣어주며 속삭인다. 그러자 그 생각을 받아들이니 사탄이 직접 몸에 들어가 잠복한다. 예수님은 이런 가룟유다를 보고 마귀하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사탄은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죄를 짓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베드로에게 공격한 사탄의 방식도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할 거라는 말을 듣자 이를 거세게 뜯어말리고 있다. 예수님이 죽는다면 자신은 뭐가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각은 사탄이 넣어준 생각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육체의 욕심이나 안일을 추구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게 사탄의 계략이며, 하나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를 분별하여야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시다. 이처럼 사탄의 공격은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는데 있기 때문에, 죄와 싸워 승리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허다한 크리스천들은 절도, 살인, 폭행 등의 현행법을 위반한 죄를 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성경을 잘 아는 교인들은 성경에서 밝힌 죄까지 알고 있다. 성경에서는 현행법과 달리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 죄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간음하지 않아도 음란한 생각만 해도 죄이고, 형제에게 마음속으로 비난한 것도 지옥으로 던져지는 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걱정, 염려, 불안, 의심, 좌절, 절망은 불신앙의 죄이며, 미움, 시기, 질투, 짜증, 분노, 싸움, 억울함 등의 죄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며, 자기연민, 서러움, 자기의, 자기만족, 자존심 등은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하는 죄이며, 부와 성공을 추구하는 생각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죄이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항상 기뻐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것도 죄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게 죄인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른 이유를 대거나 상대방에게 죄를 전가하거나 변명,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죄를 회피하고 있다. 목회자조차 교인들이 싫어하는 죄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7:9)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4~27)
성경은 아담의 후예들인 인간들은 죄로 변질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추구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제자가 되는 첫 번째 의무사항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죄를 짓지 않고 자기 부인을 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죄다 죄의 종으로 살다가 지옥의 불에 던져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며 죄와 싸우는 자들만이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여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시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게 성령의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성령의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니 이 엄청난 영적 전쟁에 무지하다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들이 죄에 무지하며 교인들이 악한 영의 계략에 무지하더라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만큼은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기는 정예용사가 되어 천국에 입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신이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에 매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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