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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Joyfule 2014. 10. 7. 21:12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느끼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인지,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비워지고 모자란 탈진한 상태인지..
그것을 느끼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의 충전 잔량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하듯이..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도 그런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깊은 충격이 되고,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도 짜증이 나고..
그러한 현상은 영적으로 완전히 방전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그럴 때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모양일까.’ 그렇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못된 열매를 맺고 망가지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구나.. 
내 속에 영적인 충만함이 거의 바닥이 난 것이구나..
이것을 깨닫고 다시 주님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주여 오시옵소서. 내 심장에. 내 인격 가장 깊은 곳에 오시오소서.’
이렇게 주를 기다리면 주님께서 오십니다.
내 속의 상태를 인식하고 주님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며
오직 주님을 향해 갈급하고 굶주린 마음으로 나아가면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는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까운가 먼가..
주님의 기름부음이 끊어졌는가 충분한가..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평화가 깨졌다는 것.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이고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재앙은 심장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영혼은 무한하게 계속 발전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발전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분노나 낙심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오고 절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느끼고 근원을 이해할수록 멀리서 마귀가 
진격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공격이 오기 전에 미리 방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첫 단계는 자기 마음이 문제인 것을 전혀 모르고 환경탓, 남탓만 하고
둘째 단계는 자기 마음의 문제를 깨닫고 씨름하고..
세 번째 단계는 평화를 경험하고, 자신이 누린 평화를 공급하게 됩니다.
점점 밖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분쟁과 재앙이 오기 전에 미리 느끼고, 사람의 상태를 느끼고
나라의 운명, 사람의 길과 방향을 점점 파악하게 됩니다.
영혼의 발달 상태는 한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왜 마음에 풍랑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주님과의 거리 때문에, 주님이 사시지 않고 
내가 살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 심장에 보좌가 있는데 거기에 내가 앉아있어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이면 그것은 곧 마귀가 보좌에 앉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움직이고, 내 힘을 따라 살게 되면 마귀를 전혀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마귀에게 지배받는 삶입니다. 
그래서 승리의 비결은 주님이 좌정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할 때, 움직일 때, 걸어다닐 때...
내 심장의 마차에 예수님께서 탑승하고 계시는가..이것을 항상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좌정하시면 노력할 필요없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조금 전까지 그 심했던 풍랑이 잔잔해집니다. 
가만히 있었는데도 마음에 기쁨이 오고, 사랑이 올라옵니다.
머리 아프고 마음에 화가 나고 불안하고 답답할 때 무조건 무릎 꿇으세요.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또 움직여서 사단이 역사했군요. 
저는 내려갑니다. 중심 보좌에 당신이 오시옵소서.”
배에 예수께서 오르시매 풍랑이 잔잔해졌더라..
여기서 새로운 미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심이 있을 때, 염려가 있을 때, 두려움이 있을 때..
주님께로 가지 않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단순히 보좌에서 내려와서 주님께서 앉으시게 하면 
우리는 저절로 열매를 쉽게 맺게 됩니다.
우리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라는 배에 주님이 타시고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깨우기만 하면
그럴 때 모든 질서는 다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평화를 얻는 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엎드려서 주님을 태우면 평화롭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통찰력이 임하기 시작하고 모든 질서는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매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주님을 친밀하게 느낄 때, 골리앗은 골리앗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분은 왕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오직 예수가 가득히 내 심장을 채울 때 우리는 마음이 평화롭게 됩니다.
예수를 통해 그 분의 왕되심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으세요
그럴 때 우리 인생도 평화롭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생각 속에 세상의 가치관, 육적 가치관이 많아요.
많은 거짓 사상에 오염되어서 자신의 영혼이 파괴되는 자체를 모릅니다.
돈이 있으면 편하다.. 돈이 크다..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하는 생각이 얼마나 마귀의 사상이며, 
흑암의 권세에서 오는 잘못된 사상인지 모릅니다.
아는 것이 많아야 성공할 거야...후원자가 있어야 잘될 거야..
이런 모든 것은 다 머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세상 문화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심령에 들어온 악한 기운, 
심령에 있는 세상 애정. 세상의 악한 영들을 토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문화를 즐기며, 세상의 영으로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잠깐 한시간 ‘마귀여 기다리세요. 교회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껍데기 예배를 드리고 
실제 삶에서의 의식, 삶의 소원, 욕망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말씀을 깨닫고 나면 점점 행복해집니다.
예수가 왕이시고, 보이는 물질은 중심이 아니고 주를 알아가고 예배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
선악과를 먹고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떨어진 이후에 
끊임없이 오직 추구할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지위나 돈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심장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예수를 정말 좋아하는가, 
아니면 자기의 영광을, 세상의 사랑을, 명예를,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가..
순결함을 사랑하는가, 더러움을 사랑하는가..
교활함, 이기적인 마음.. 그 중심 가슴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노력과 머리의 애씀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심령의 기독교는 심장이 주를 사랑함으로 깨어날 때 가능합니다.
진정 주를 사랑하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순수하게 주님이 임하셔야 하고 주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막 높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너무 신앙이 훌륭해요.. 깊어요..” 
이러한 높임을 허용하고 즐기면 영혼이 파괴됩니다. 
마귀는 너무나 교활해서 사람의 공명심, 열등감.. 
그런 것을 만족시키고 허탈한 자기 영광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신앙, 영성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갈망하고 예수께 미치는 것을 
특별한 신앙으로, 특별하고 아주 깊은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 모든 존재가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과 눈물을 견딜 수 없어서
하루 종일 그리움이 일어나는 것이 희한한 사람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것이 원래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주를 갈망하는 자들이 없는가
그것은 오직 한가지.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따라합시다.
“예수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행복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너무 너무 행복하다.
목숨을 모든 것을 잃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
여러분. 그 상태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애정이 발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말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평생 생각하고 사로잡히고 사모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변화되고 깊어져 가는 것이 인생의 성장 과정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어둠의 영들에게 시달리며 사는 것입니다.
마귀가 얼마나 교활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낮은 욕망, 물질적인 낮은 것에 만족하게 하고
정신적인 낮은 영역의 것에 속해 있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낮은 영역의 욕망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심이 얼마나 기가막히고 좋은지
기도가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왜 모르냐면 
마귀가 주는 많은 거짓된 사상을 받아먹고 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많은 아름다운 사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라는 것에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 메시지는 결국 천국에서 오는 것, 지옥에서 오는 것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시대의 메시지는 대부분 지옥에서 오는 사상에 속해있습니다.
인간의 감동, 인간의 애정, 사랑, 우정... 거기에서 오는 기쁨, 만족.. 
십자가가 아닌 많은 감동, 환희, 전율..
사람이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이룬 것에 대한 감격적인 묘사..
인간적인 선함과 인간적인 사랑을 통한 감동적이고 멋있는 많은 것들. 
이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상 속에 세뇌, 입력되어서 
자신의 영혼과 주님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죽이는 많은 사상들이 있는데..
기독교인들 마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냥 재밌으면 취하고 빠져듭니다.
그리고 낮은 영역, 낮은 수준의 사상, 낮은 욕망으로 머물러 있게 하는 
어두운 세뇌로 인해 주님을 향한 갈망을 잃고 세상에 동화되어 갑니다.
마귀가 얼마나 사람을 사로잡으려고 애쓰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의 핵심은 쾌락을 주는 것입니다.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의식과 소원이 물질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
그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서 쾌락을 주는 것은 쉽기 때문에
마귀는 어떻게든 그들을 만족시켜주려고 합니다.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거나, 인간적인 애정을 충족시켜 주거나, 
어떤 세상의 즐거움을 주려고 합니다...
일단 얻어먹으면 그 사람은 마귀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은
"이제는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의 위로를 구하지 말고 하늘의 위로를 받아라.." 하시는 것인데..
가장 답답한 사람이 세상 친구에게 위로를 받으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위로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일단 위로를 받으면 귀신들로부터 결속력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를 거절하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 죄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 가슴이 변할 때 모든 것이 변합니다.
가슴의 소원, 가슴의 욕망이 변해야 합니다.
근본 문제는 내 가슴에 뭐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 내 목숨과 바꿔도 된다..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 주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중심은 욕망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에 어떤 욕망이 있느냐..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입니다.
중심 욕망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중심의 애정과 소원... 그것이 보좌인데 그 보좌에 예수께서 계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사랑하는 소원이 다른 것보다 더 강렬해질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에는 
‘구하고 찾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좋은 것은 주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를 얻고, 예수를 얻고, 심령이 바뀌기 위해서 구하고 찾고, 
자나 깨나 걸으나, 언제 어디서나 미친 듯이 예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구할 대상은 예수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절히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를 간절히 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애절하게 구하지 마세요
다른 모든 것은 되도 좋고 안되도 좋습니다
예수 아닌 다른 것을 너무 간절히 애절히 구한다면 주님께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 
나보다 더 중요하냐..’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을 경배하고 구하면서
‘아니예요. 주님이 첫째입니다.’ 하고 주를 구할 때 주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임하실수록 중심의 소원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다른 모든 욕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임하실수록 중심의 소원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다른 모든 욕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예수를 중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골리앗이 크게 보이고 
아낙자손이 거인 같이 보이고 풍랑이 조금만 불어도 크게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배에 타시면 눈앞에 예수만 보입니다.
예수가 크게 보일 때.. 어떤 문제도.. 살던 죽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에 
주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만족을 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마귀가 주는 만족에 빠져서 그것을 즐기고, 
더 얻어 먹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외로울 때, 힘들 때, 심심할 때, 시간 있을 때.. 
다른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하고 무릎을 꿇으세요.
우리가 정화되면 될수록 
기도, 예배, 주님..거기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정화될수록 기도가 너무 행복해집니다. 너무 아름다워져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티 하나만 들어가도 너무 아프죠.
우리 속에 불결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는 주님의 영광과 달콤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점점 정화되고 세뇌에서 벗어날수록 
예수. 예수. 예수. 부를 때 그분이 나의 연인이고 나의 사랑이고
기도처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요.
우리의 욕망 중심 바뀌어서 예수가 주시는 선물 아니라 예수 자신에 대한 그리움..사랑..
그것이 더 많이, 더 많이 일어나서 
심장의 기독교. 연인되신 예수를 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예수.. 예수..내가 사랑하리라 
평생.. 평생..더 간절히 미친 듯이...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살게 됩니다.
기도가 삶의 이유가 되고 기도하기 위해 밥먹고 직장에 가고 돈을 벌고
주를 만나 교제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주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 될 때 아주 인생이 단순해집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더 구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만큼은 꼭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제목들이 점점 사라져 갑니다.
저의 소원과 기도는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예수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이 예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이 두가지 소원 때문에 저는 살고 있어요.
순결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향기로운 사람 주의 사람 되고 싶고
더 더.. 더...엎드리고 기도하고 싶은... 그 소원. 그것은 천국에서 오는 것이예요.
예수. 예수. 주를 부르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시작하고 도모한 많은 순간들 용서해 주세요.
기도 없이 움직인 많은 것 용서해 주세요.
무릎으로 살지 않은 순간을 용서해 주시고 내 안에 더 많은 사랑을 일으켜 주세요.
많이 애쓰고 노력하게 하는 공포 신앙. 
두려움으로 죄를 억압하려고 하는 것.거기에는 승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실패할 것입니다.
그럴 때 ‘왜 나는 사랑이 없을까..’ 탄식하는 것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리는 것 밖에 없어요.
여호수아는 전쟁에 패하고 하루 종일 엎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겼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자 그저 엎드려 있었어요.
주께서 ‘일어나라.’ 할 때 까지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사랑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 임하셔서 그 분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은 내가 애쓰면 되는 줄 알고 있어요. 
내가 착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아요.
그러나 나는 끝났습니다.
아직 자기가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찌하여 엎드렸느냐.”
그리고 주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사랑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내 안에 계신 예수 이름이,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나의 남편을 아이를 사랑하시고 부모님을 사랑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인데 나로서는 죽었다 깨도 사랑할 수 없는데
내 안의 예수께서 강권하고 이끌어가십니다.
그러면 순풍에 돛단 듯 자연스럽게 사랑이 일어나고 평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면 쉽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가 왜 이모양이지.” 하며 자책하는 이들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주 앞에 엎드리세요.
우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 분을 갈망하게 되면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나면 주님께서 이끄시고 사로잡아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다음부터 따라만 가면 됩니다.
우리 마음의 고백을 드립시다.
무릎으로 엎드려 살게 하소서...
오직 예수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사랑이 임하기 원합니다.
예수 사랑을 내 안에서 일으키소서...
예수 사랑에 함몰되어 사는 무릎으로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의 중심의 애정, 중심의 소원에 좌정해 주시고
나의 연인이 되어주시고 나의 유일한 소원이 되어주세요..ㅠㅠ
내 진정 소원이..내 구주 예수를..더욱 사랑..더욱 사랑...
주님..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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