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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는 요구를 거절하라!

Joyfule 2014. 10. 1. 22:23
 
원하지 않는 요구를 거절하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 표현은 분명해야 한다. 
자신이 표현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이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상대방의 요구에 대하여 분명하게 싫다고 표현하지 않고 
자기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며 
그것은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거절이 더 어려운 경우는 그 요구하는 대상이 부모님이거나 영적인 지도자들일 때이다. 
특히 사역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게 될 때는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더 거절이 쉽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어떤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그분이 말끝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 목사님. 순종하겠습니다.”
 내가 무슨 명령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그가 계속 그런식으로 말을 하니까 마치 무슨 조직의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같이 느껴지는 것이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집사님. 자꾸 순종, 순종.. 하지 마세요. 지금이 무슨 이조시댑니까? 
아니면 제가 무슨 조폭의 왕초입니까?” 
그분은 웃음을 터뜨리며 죄송하다고, 
목사님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목회자, 사역자는 어떤 절대 권력자가 아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무조건 사역자의 말이라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역자들이 자기의 말에 순종해야 복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러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옳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역자는 주님의 뜻을 대변할 때에 비로소 권위가 주어진다. 
하지만 사역자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언제나 주님의 뜻을 대변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사역자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경죄를 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역자에 대해서 대적하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상호간에 겸손하고 예의바른 자세는 필요한 것이다. 
다만 사역자의 요구와 자신에게 주어진 주님의 감동이 다를 때에는 
겸손한 자세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역자도 성도들에게 일방적으로 어떤 것을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 앞서서 주님을 붙들고 걸어가는 자로서 권면을 할 수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결정권은 본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조건 피동적으로 따르는 기계적인 신자로 만들지 않고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주님을 따르는 신자가 되도록 돕는 길이다. 
일방적인 명령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을 하라는 식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자기에게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인 것이다. 
나는 사리에 맞지 않는 사역자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고통을 겪는 순진한 성도들을 많이 보았다. 
형편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무리한 헌금 요구라든지, 
가정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교회의 집회나 행사에 참석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데에도 일군이 없다고 일을 일방적으로 맡긴다든지.. 
하는 일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마음에는 전혀 감동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무나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너무 두렵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게으름이나 불순종 때문에 
어떤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들이 그들에게는 많이 있었다
즉 그러한 요구들은 하나님의 뜻인데 자신들이 부족해서 그것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죄스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상황과 여건이 허락지 않으며 기도해도 감동이 없는 것을 무조건 억지로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행하는 것을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실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이 주님의 뜻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삶이 주님께 드려지지 않고 
오직 자신이 편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주님의 뜻과 감동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은 기도해도 주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알아가기 원하며 
주님께 순종하기 원하는 이들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소원과 감동을 주신다. 
물질이 부족한 중에도 기도하면 자꾸 드리고 싶은 감동이 온다. 
몸도 피곤하고 여건이 허락지 않아도 기도를 드리면 자꾸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온다. 
그것이 주님의 응답이며 감동이다. 
그렇듯이 주님의 뜻과 감동은 내적인 기쁨과 소원과 감동으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해도 그러한 기쁨과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럴 때에는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사역자의 말을 거절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치유자이며 위로자이시지 우리에게 부담과 억압을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겸손하지만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할 수 없이 굴복해서 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억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순종이란 적극적인 의사의 표현이다.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원하고 기도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감동을 느끼고 
순종하게 될 때 그것은 우리 영혼을 충만하게 한다. 
그러나 순종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야 한다. 
항상 언제나 순종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는 순종이 나올 수 없다. 
그것은 압제이며 굴복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그 자유를 가지고 우리가 선택을 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요구가 있을 때 오직 주님께 나아가서 기도하라. 
오직 주님만이 당신에게 명령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받은 감동이 다른 이들의 요구와 다른 것이라면 당신은 거절을 해야 한다. 
조용하고도 냉철하게 분명하게 싫다고 말해야 한다. 
다만 그러면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에게도 종속적인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의무는 수행해야 하지만 자신의 인격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라. 
당신의 영혼이 남들에게 지배되지 않으며 
또한 당신도 다른 이들을 지배하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당신이 지금까지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당신이 이 거절에 대하여 
조금씩 경험해갈 때 당신은 진정 자유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사람에게 묶이지 말고 오직 주님께 묶이라. 
사람에게 묶이는 것은 정말 속박이지만 주님께 묶이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다. 
부디 당신의 자유를 선택하라. 
거절을 배우라. 
거기에서부터 자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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