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왜 초대교회는 되는데, 우리네 교회는 안되는가?

Joyfule 2020. 4. 8. 08:45



     왜 초대교회는 되는데, 우리네 교회는 안되는가?



신포도 이론과 달콤한 레몬 이론

 

우리는 생활하면서 종종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심리적인 방어기제인 자기 합리화를 사용하곤 한다. 합리화란 잘못된 견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합리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신포도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달콤한 레몬 이론이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맛있게 보이는 포도를 먹기 위해 포도나무를 올라가지만 결국 따지 못하자 "저 포도는 어차피 시어서 먹지 못할 텐데·····"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목적이나 욕구가 좌절될 때, 그 욕구와 현실 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기 정당화를 내세우는 것을 신포도 이론이라고 한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 했으나 실패한 사람이, 자신은 처음부터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것 즉 합리화하는 것을 말한다.

 

달콤한 레몬 이론이란 신포도 이론과는 정반대 이론으로, 이것은 아무리 신 레몬일지라도 자기 것이라면 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이, 생각했던 기대와 너무 많은 차이가 나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생긴다. 그것을 피하고자 스스로 긍정적인 합리화를 하는 것이 달콤한 레몬 이론이다.

 

이런 일이 교회에도 있다. 바로 초대교회에는 있는데, 우리네 교회에는 없는 것에 대한 교단의 주장이다.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과 이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이 일으킨 각종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고 장애를 회복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자,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초대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초대교회의 역사는 초대교회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말하자면 성경이 완성된 이 시대에는 그런 기적과 이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는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론과 너무도 닮았다. 자신들의 무능과 무기력을 감추기 위해,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에는 성령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 없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달콤한 레몬이론처럼,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가해서 십일조와 헌금을 넘치도록 드리며, 각종 교회봉사를 하며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으니 자신들보다 열정적인 교회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대교회에서는 하지 않는 예배의식과 교회봉사, 성경공부를 내세우며,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라고 합리화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영성학교는 아니다. 영성학교는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령의 내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영성학교가 문을 연지 5년이 다 되어간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수많은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었으며 기적적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처럼 성령의 사람들이 줄을 이어 배출되지 않는다는 게 영성학교가 마주한 딜레마이다. 그래서 오늘은 초대교회와 울 영성학교의 간극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1.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6:7~13)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2~14)

 

아시다시피,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시고 훈련시킨 12사도들이다. 그들이 우리네 교회의 지도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바로 직접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것이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고 마을로 보내시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직접 체험하게 훈련시키셨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기다리는 명령에 따라, 120여명의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서 전심으로 기도하여 성령이 임재 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입교한 기독교인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명령했던 이유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전심으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면 누구나 성령이 임재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지도자는 어떤가? 그들은 신학교에 입학해서 커리큘럼을 이수하여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면 목사가 되어서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초대교회처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에 대해 무지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할 생각조차 없다.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신들의 믿음을 감추고 포장하기 위해,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능력은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에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괴변을 늘어놓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초대교회와 우리네 교회는 지도자의 능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전심으로 기도한 끝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였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초대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나간데 반해서,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은 사람들의 학문인 신학을 배우면 교회지도자가 되는 게 다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어떻게 얻는지 알지 못하기에,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2. 초대교회 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고 지도자의 가르침에 철저하게 순종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2~47)

 

초대교회 교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이미 유대교를 열심히 믿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교로 마음에 찔려 회심을 하고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네처럼 새로운 종교를 믿는 수준과 다르다. 당시 유대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로마황제였으며 사회적으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었다. 로마황제와 유대교 지도자들은 서로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사이였다. 로마황제는 식민지국가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백성들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유대교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권력을 양도하였고,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위치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황제의 권위에 순종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로마당국과 유대교지도자의 박해와 핍박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직업과 재산을 포함한 기득권을 버리고, 가족과 뿔뿔이 헤어져서 고향을 떠나 유리방황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잡히면 모진 고문 끝에 투옥을 당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말하자면 초대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를 갖는 평범한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조차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입교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인 교회지도자의 가르침에 철저하게 순종했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어떤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가?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영역과 할 수 있는 선에서 교회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르고 있다. 아무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느냐고 항변하면서 자신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투로 대답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1~27)

 

이처럼 우리네 교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초대교회 교인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예수님의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 자들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신앙이 무너져서 죄다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귓등으로 듣고 있다.

 

3. 초대교회에는 하나님의 만나는 기도와 말씀사역에만 집중하였다.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일주일이면 열 번이 넘는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주일에 두 번의 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심지어 새벽기도회에도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교회조직 유지를 위한 봉사를 요구한다. 성가대, 교사, 구역장 등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교인들에게 이중삼중의 봉사를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교회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거나 최소한 참여를 요구받고 있다. 각종 수련회, 교육 프로그램 심지어는 야유회나 체육대회까지 강제적으로 참여를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전도이다. 교회마다 전도팀이 있고, 매년 교회적으로 새생명축제라고 불리는 전도행사가 있으며, 담당전도사들이 전도하라고 목을 매고 있다. 부교역자들도 담임목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교회의자에 앉혀 놓아야한다. 명칭과 수준은 다르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 교회는 거의 없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42)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6:1~4)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무슨 사역을 했는가? 위의 구절을 보면 교인들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에 전념하였으며, 사도들 역시 기도하는 일과 예수님께 들었던 내용을 성경으로 만드는 사역에 전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60년 어간에 기록되지 시작했으므로, 사도들은 자신들이 각각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공론화하여 정론으로 만드는 사역에 분주했을 것이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우리네 교회처럼 예배의식을 시행하고 참석하며 교회조직유지를 위한 각종 봉사, 사람들을 데려와서 교회의자에 앉히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교인들은 죄다 성령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에 전념하였고, 교회지도자들은 생전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가르쳤으며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이 세 가지가 초대교회와 우리네 교회와 다른 점이다.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은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였기에 성령이 임재 하는 기도를 훈련시킬 수 없으며, 설령 그런 기도를 훈련시킨다고 할지라도 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지도 않는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영혼을 걸고 예수를 믿고 철저하게 기도하는 삶을 살았지만, 우리네 교인들은 종교적인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네 교회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인들은 교회조직을 지탱하거나 교세를 불리는 일에 파김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울 영성학교는 어떠한가? 영성학교 지도자들이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였거나 성령의 능력이 없다거나, 영성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와 말씀사역이 아니라 교세를 불리거나 교회조직을 지탱하는 비본질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충족하고 있다면, 마지막 세 번째는 영성학교 식구들이 해야 할 몫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와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굳이 두 세시간 넘게 자동차를 타고 힘들게 시골까지 올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