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2과 5) |
여호수아(3): 가나안 남부-북부 정복 (9-12장) |
1-2. 가나안 남부 점령(10장) (지도 보기: "기브온 전투 사건")
기브온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인 반면에 아노니섹은 적극적으로 이를 거주하고 맞서 싸웠다. 그 결과 그는 헤렘의 법이 적용되어 엄한 처벌을 받고 말았다. 강성한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은 헤브론과 야르뭇과 라기스와 에글론의 왕들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러 올라왔다. 이때에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 요청을 들은 여호수아는 즉시 출동하여 남방의 다섯 나라의 연합군을 제거하고 그들의 땅을 정복하였다.
가. 남부 연합군의 공격과 기브온의 원군 요청(1-6)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일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이 듣고(1)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2).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아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3), 내게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4),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5).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6)..."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한 일과,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은 일은 곧 가나안의 왕들에게도 전해졌다. 기브온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던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불안해하였다. 예루살렘은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53km,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곳을 '살렘'이라고 불었으며(창 14:18), 사사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렀다(삿 19:10, 11). 다윗 왕은 이 곳에 있는 성을 '다윗 성'이라고 부르고(삼하 5:6-10),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했다. 아도니세덱은 '의의 주(主)'라는 뜻으로서 이 명칭은 예루살렘 왕들에게 부여된 공식 칭호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칭호가 '의의 왕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멜기세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창 14:18). 따라서 일부 학자는 이 예루살렘 왕을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Matthew Henry). 여부스 족속에 속하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당시 남부 팔레스틴의 여러 왕들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음으로 여리고->아이->벧엘->기브온으로 이어지는 가나안 중심부가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들어간 일을 듣고 두려워 떨었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중부를 점령했다는 것은 곧 가나안의 남북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다음 대상이 기브온과 가장 가까운 거리(약 10km)에 있는 예루살렘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등 네 왕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동맹한 기브온을 치려고 했다.
이러한 아도니세덱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브온은 장로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갖춘 성읍이었다(9:11). 그러나 기브온은 주변의 여러 성읍들 곧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과 같은 성읍들을 거느린 영향력 있는 성읍이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왕도와 같은 성읍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9:17).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으로서, 구약 성경 에서 50번 이상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이곳은 애굽의 '소안' 보다도 7년 먼저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문화. 정치의 중심지였으며(민 13:22),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에 이 곳으로 이주했다(창 13:18).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했으며,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요셉은 헤브론에 자기 부친인 야곱을 장사하였다(창 50:13). 가나안 정복 후에는 갈렙이 이곳을 차지하여(수 14:13), 나중에는 도피성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곳 이름은 '친구', '벗'이란 뜻의 '엘 칼릴'인데, 매우 질 좋은 우량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야르뭇은 현재의 엘류데로폴리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약 15km 지점에 있다.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으며(15:20-62), 바벨론 포로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성읍으로 돌아왔다(느 11:29). 오늘날의 명칭은 '얄무크'이다. 라기스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서남방 약 48km 지점에 있는 가사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 지방의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 곳은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5:39).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곳은 오늘날의 '움 라기스'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obinson). 에글론은 라기스 동쪽으로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다. 이 성은 가사로부터 예루살렘 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었다(15:39).
아도니세덱은 이들 네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올라오라'는 말은 다른 왕들의 성읍이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과 잘 부합되는 말이다. 그리고 '도우라'는 말('아자르')은 '원조하다', '구원하다'는 뜻으로, 침략을 당하거나 침략을 할 때에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 힘에 부쳐서 상대방의 원조를 요청하는 말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이스라엘보다 먼저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제안하고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가나안 족속으로서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의 적 이스라엘을 함께 격퇴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은 데 대한 강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 기브온을 멸절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제2의 기브온과 같은 성읍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사단은 자기 수하에 있던 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사단은 예전처럼 그들을 예속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방해한다. 아모리의 다섯 왕은 이렇게 해서 서로 동맹하게 되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중 가장 강력하고 넓은 판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족속으로 성경에서 흔히 '가나안 족속'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창 15:16).
그들은 동맹한 후에 기브온과 마주 진을 치고 싸웠다. 여기서 '대진하였다'는 말('하나')은 '기울이다', '야영하다', '포위하다', '방어하다'등의 뜻인데, 여기서는 '야영하다'(encamp)란 의미로 사용되었다(KJV, RSV).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동맹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즉시 이스라엘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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