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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10.

Joyfule 2010. 1. 25. 22:4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10.

잠언(5): 히스기야 신하가 편집한 솔로몬 잠언들 (25-29장)

 

14. 재판과 공의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25:26)."

  의인이 악인 앞에서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지고 샘의 더러워지는 것같이 큰 해를 가져온다. 죄의 유혹을 이기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그가 사는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이 악인의 위협을 받고 그 의로움을 상실할 때에 그가 속한 공동체는 혼란과 좌절, 실망, 그리고 타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의인은 혼탁해진 사회에서 맑은 물을 내는 우물과 샘과 같기 때문에 그가 넘어짐은 사회를 정화할 샘과 우물이 더러워지는 것과도 같다.

 


15. 게으름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르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26:13-16)."

  우리말 성경에는 둘 다 '사자'로 되어있으나 원래 이 말은 서로 다른 용어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사자는 '솨할'(일반적인 사자)이고, 두 번째의 사자는 '아리'(특정한 포악한 사자)로 되어 있다.  이 구절을 좀더 실감나게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게으른 사람은 '거리에 사자가 있으며, 아주 포악한 사자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고 말한다.

" 게으른 자는 가능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내고,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염려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문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처럼 게으른 자도 침상에서 일어나기를 싫어하여 침상에서 뒹굴기를 좋아한다. 어떤 학자는 '게으른 자가 침대 위에서 몸을 한 번 뒤집었다면 그에게는 그 일이 엄청난 일을 한 것이다'고 비꼰다(McKane).

게으른 자는 밥그릇에 손을 넣고도 그 음식을 입에 넣는 일조차 힘들어한다. 이러한 게을러서 마땅히 자기의 소유가 될 것도 놓쳐버린다. 게으른 자는 선하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 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생각한다. '선히 대답하는 사람'은 바른 판단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말하고, '일곱'이란 완전을 의미한다. 게으른 자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참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진지한 토론을 거부한다. 그의 관심은 오직 본능을 좇아 안락한 삶을 사는데 있기 때문에 지혜를 추구하는 일을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 매도한다.

 


 

16. 투기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으나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27:4)."

  '노함은 잔인하고 분노도 잔혹하지만, 그러나 질투는 그보다 더 잔인하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질투란 사르는 불과 같이 파괴적인 폭력성을 띤다(욥 38:25; 사 32:6; 나 1:8). 질투는 그 무엇으로도 화해하기 어려우며 그 보복은 가장 극한 형태로 나타난다.


 

17. 방황

 

  "본향을 떠나 유리 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27:8)."

  자기 집을 떠나 방황하는 자는 비참한 삶을 살게된다. 특히 이 구절은 공동체를 떠난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사회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은 매우 강했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쫓겨나거나 떠난 사람은 생존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받았으며, 도망자나 방랑자가 되는 일은 가장 혹독한 징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창 4:12,13). 그러나 성도들에게 무엇보다 위험하고 절망적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떠나는 일이다.


 

18. 좋은 소식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25:25)."

  중요한 소식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사람에게 먼 땅에서 오는 기별은 마치 목 바른 사람에게 시원한 냉수와 같다. 당시에는 우편 제도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멀리 있는 소식을 전해 듣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사람이 좋은 소식을 받았을 경우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새 힘을 회복하게 된다. 영적인 범주에서 볼 때 우리는 '좋은 기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od news)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요 4:13, 14;7:37).


 

19. 환경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27:7)."

  배부른 자는 꿀을 주어도 싫어한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은 쓴 음식이라도 달게 받고 감사하게 그것을 먹는다. 이미 쾌락에 탐닉해 있는 사람은 웬만한 기쁨에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자기를 잘 절제하는 사람은 작은 기쁨에도 큰 감사를 느낄 수가 있다(Cook). 이를 복음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자신의 영적인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음을 큰 은혜와 감격으로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음이 미련해 보인다(마 5:6).


 

20. 탐심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27:20)."

  '지옥과 멸망은 아물 사람이 많이 와도 가득 차지 않는다. '지옥'은 죽음의 세계를, '멸망'은 파괴적인 힘인 죽음을 가리킨다. 이 둘은 역사 이래로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민족들을 삼켜왔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여 더 달라고 버티고 서 있다. 지옥이나 멸망 못지 않게 만족을 모르는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안목의 정욕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끝없는 이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에게 진정한 안식이란 없다. 그러나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욕망은 누그러지며 따라서 그분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맛볼 수 있다(요 4:13, 14;빌 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