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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8과)12.

Joyfule 2009. 12. 31. 08:0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8과)12.

잠언(3-2): 솔로몬의 잠언(2) (16-22장)


                  
 3. 솔로몬의 잠언들(10:1-22:16)

  

7. 경제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해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16:26)."

  '식욕'(네페쉬)은 '영혼', '호흡', '욕구' 등의 뜻인데, 여기서는 이 말이 종교적, 도덕적인 것과 대조되는 본능적인 욕구를 의미하고 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독촉한다'('아카프')는 말은 '무거운 짐을 싣다', '강요하다', '압박하다'란 뜻으로서 먹고사는 문제가 일을 하도록 압박하고 구속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람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일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노동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결과로 주신 것을 기뻐할 수 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18:11).....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18:23)."

  의인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나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재물을 피난처로 삼는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높은 성벽으로 생각하여 재물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환난에서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에서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여러 가지 유익과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재물을 의지하게 되면 그 재물이 우상이 되어 도리어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말대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다(딤전 6:10).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재물을 모으고 그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올바르게 사용하되 지나치게 물질에 매여서는 안된다. 18장 23절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결정된 사회적 지위가 가져다주는 비참함과 냉혹함을  나타낸다. 가난한 자는 선택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늘 자비를 구하는 탄원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반면에 부자들은 무자비하고 냉혹한 요구만을 할뿐이다. 그러나 (눅 18:10-14)에 나타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처럼 하나님은 자비를 구하는 자의 음성을 들으시며 자신의 공적이나 재물을 의지하는 자를 외면하신다.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19:4-7)."

  부와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를 가까이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남에게 나누어주며 살아야 한다. '너그러운 사람'(나디브')은 '관대한 사람', '고관이나 귀족'을 말한다. 아량과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서 은총을 구한다.

 

부자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를 칭송하만, 그들이 부자를 찾는 것은 그가 주는 재물이나 권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비록 형제들일지라도 자기의 것을 주어야 하는 형제는 별로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라도 가난한 자를 다가와 하지 않는 다면 그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형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가난을 벗어나라는 권면과  동시에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20:10)....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20:23)....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20:14)."

  여호와는 저울을 속여서 장사하는 부정직한 행위를 미워하신다. 이것은 신 25:13-16의 율법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저울추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돌과 돌'이며 이는 이중 저울에 관해 암시한다.

 그 당시에는 상거래가 주로 저울과 말로 이루어졌는데, 팔 때는 작은 말을 사용하여 적게 주고 살 때는 큰말을 주어 많이 받아서 이중적인 이(利)를 취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20장 14절은 우스꽝스럽지만 상거래에서 실제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즉 사기전에는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불평 불만을 늘어놓지만 자기 수중에 들어오면 그것을 자랑하는 구매자의 이중적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앞에서 언급된 바 있는 속이는 저울과 말의 교훈과 일맥 상통하는 셈이다(10절). 이러한 이중 심리는 비단 상거래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심성에 깃 들어 있는 보편적 요소이기도 하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의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20:16)."

  섣불리 보증서는 일에 대한 경계는 잠언서에 여러 번 나온다(6:1,2; 11:15; 17:18; 22:26; 27:13 등). 특히 이 구절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의 빚 보증을 선 사람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본절의 '타인'(자르)과 '외인'(나케리얌)은 각각 '(공동체 밖의)낯선 자', '행실이 나쁜 여자'를 뜻한다. 다후드(Dahood)는 후자를 '창녀'로 이해하기도 한다.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 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20:17).....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20:21).....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21:6)."

  20장 17절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쉽게 버는 것이 결국에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됨을 말하고 있다. 속임수로 혹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얻은 빵이 처음에는 맛이 좋은 듯하지만 결국 그것은 입 속에 가득 담긴 모래와 같이 해독만 끼치게 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금단의 열매를 연상시키나,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모든 것에 적용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20장 21절은 (13:11)과 (15:27)의 내용과 동일하다. 이 구절은 우리들에게 성급하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 부당한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산업'('나할라')이란 말은 단순히 '재물'이 아니라 '유산'이나 '상속'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무절제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섣부르게 재산을 모으려는 사람을 비난하며, 때가 되기도 전에 가족의 재산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로스는 느닷없이 횡재한 재물이란 결코 만족감을 줄 수 없다고 이 구절을 해석한다. 그것은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적인 유익이 없으며 도리어 삶의 자세만 흩뜨려 놓게 된다.

 

 또한 '속히 잡았다'는 말은 법을 어기거나 또는 정당하지 않게 재물을 취득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눅 15:12)에 언급되고 있는 탕자의 재산 분할 요구와 같은 불법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재산은 속히 낭비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21장 6절은 거짓말로 재물을 구하는 일이 죽음을 구하는 일이며, 바람에 불려 다니는 안개와 같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직역하하면 '거짓으로 재물을 구하는 것은 몰려가는 증기와 죽음을 추구하는 자들이다.'라고 할 수 있다. 바람에 불려 다니는 수증기는 언제 그 방향이 바뀔지 알 수 없는 변화 무쌍한 것을 말하고, 죽음을 구한다는 말은 형벌이 이미 예비된 범죄자를 의미한다.

 

불의한 방법으로 취한 재물은 언제 다시 잃게 될지 모르며 현재 그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공의로운 법에 의해 언제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인내와 계획성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조급하게 부자가 되려는(5절) 사람이 맞게 될 운명에 관한 지적이자 그들을 향한 경고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20:18).....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다름이니라(21:5)."

  유효 적절한 생각과 성취 가능성 있는 계획은 건전한 비판과 조언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본절은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반절의 '전쟁하라'는 말은 상반절의 '의논하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의논'과 '모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곳의 '전쟁'이란 말은 일상 생활 속에서의 악과의 투쟁이나 재판정에서의 소송 등에 대한 상징적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영(마흐쉐보트)이란 말은 '생각', '사상'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계획'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본절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하반절의 조급한 성과의 대조를 고려해야 하므로 이 '계획'은 인내를 동반한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인내가 곁들인 '계획성'은 우리를 번영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조급하다는 말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빨리 부자가 되려는 자를 말한다(20:21; 28:20 참조).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22:7).....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22:16)."

  22장 7절은 통시대적인 교훈을 주고있다. 땅이 존재하는 한 그 위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가난을 면하라는 것이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자칫 비굴해질 수 있으며 마음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게으름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믿지 않는 자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높은 차원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가운데 현실적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예외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22장 16절의 해석의 열쇠는 '이' 곧 '유익'의 소유주를 누구로 보느냐에 있다. 문법상 이 소유주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 혹은 '가난한 자 자신'의 둘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둘 중 후자로 보게 되면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유익이 되고 부자에게 주는 자는 손해를 볼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인간의 악한 의도와 그에 따른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에 의해 역전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가난한 자, 곧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가해진 억압은 신비스럽게도 그를 승리하게 만들어주고, 부자의 축적된 재물은 부자 자신에게 몰락의 원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