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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8과)15.

Joyfule 2010. 1. 4. 06:19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8과)15.

잠언(3-2): 솔로몬의 잠언(2) (16-22장)


                  
 3. 솔로몬의 잠언들(10:1-22:16)

  

13. 교만과 겸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18:12)

  '교만'은 맨 앞에서 서서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선봉장과 같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겸손은 맨 앞에 서서 사람들을 존귀하게 만드는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와 같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받게되어 그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 그리고 겸손한 인간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이웃을 대하기 때문에 이웃들에게도 놈임을 받게 된다. 이러한 겸손에 대한 최상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인간이 되셔서(요 1:1,2; 빌 2:1-11) 죽기까지 순종하고(히 5:8) 존귀하게 되셨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21:4)....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21:24)."

  이 구절을 직역하면 이렇다. '교만한 눈과 자랑하는 마음, 악인의 등불은 죄이다.' 이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지만 '등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이 말은 '니르'인데 어떤 학자는 이것을 '경작한 땅'으로 해석하는데 이 해석은 무리해 보인다. 왜냐하면 악인이 경작하는 땅 자체가 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악인의 '경작하는 수고'로 볼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은 일반 은총의 일환으로 악인과 의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시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한 악인도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며 그것 자체를 죄로 볼 수는 없다(마 5:45).

 

따라서 '니르'를 '등불'로 보는 것이 좋은데 성경에서 '등불'은 종종 번영과 행복을 상징한다(삼하 22:29; 왕상 11:36). 죄인의 번영함은 그 출처가 악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덕과 경건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된다고 유추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70인 역과 아람 역 등이 이 번역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악인의 교만, 자랑뿐 아니라 그의 번영까지도 죄라고 못박고 있는 것이다. 망령된 자('레츠')는 '조롱하는 자'를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경거 망동(輕擧妄動)하게 행하고 말하는 자에를 의미하며, 당시에는 이러한 자들을 저주스럽게 여겼다(Kidner).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22:4).....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22:10)."

  22장 4절은 두 개의 영적 조건, 곧 겸손과 경외에 이어 세 가지의 상급, 곧 부,  영예, 생명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 두 문구의 관계성은 '보응'이라고 번역된 '에케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용어는 '결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상반절이 말하는 겸손과 경외는 영적인 의미상 동격으로 볼 수 있는 속성들이다.

 따라서 상반절을 '겸손, 곧 여호와 경외의 결과는'으로 번역해도 무리는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 의지적 복종, 죄의 확신, 이에 따르는 결과들이 모든 것을 여호와 경외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2장 10절은 불화나 다툼이 어떤 조악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악한 태도를 가진 사람 때문에 발생할 때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럴 경우에 필요한 것은 제도 따위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 사람(troublemaker)을 쫓아내는 일이다(마 8:16).

 

또한 본절의 의미 속에서 '거만한 자'란 어떤 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소집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성향은 결국 그가 하나님과의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자는 회의가 진행되기 전에 쫓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과 화합하지 못한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났다(창21:9-14). 70인역은 원문과는 다르지만 이런 측면을 지지하는 번역을 하고 있다: '거만한 자가 회의장에 않아 있으면 그는 모든 사람을 모욕한다.'

 


14. 우정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나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18:23)."

  '해를 당한다'(레히트로에아)는 말은 산산조각 난다'는 의미이다(사 24:19). 도움이 되지 않는 불량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면 재산을 허비하고 많은 시간을 탕진하게 만든다. 이것은 탕자가 나가서 불량한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로 인해 모든 재산을 탕진한 것과 같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어려운 때에 친형제보다도 더 위로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친구를 얻고 또 자신이 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친밀한 친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다 우리를 버릴 때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