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에는 두부류의 목회자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두부류가 아니라 대부분 한 부류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쓴 이유는, 실상은 두 부류의 목회자가 있다는 것쯤은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 칼럼의 제목으로 쓴 것뿐이다. 한 부류는 하나님을 지식으로 가르치는 목회자이고, 다른 부류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이다. 구약성경은 성경의 위인들이 몸소 하나님을 경험한 내용이거나, 예언서인 경우에는 하나님께 들었던 내용을 쓴 것이고, 신약성경은 사도들과 사도들에게 직접 양육을 받았던 제자들이 사도들에게 들었던 내용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에는 이런 스승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을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종교지도자를 찾아 나선다. 번듯한 신학교를 졸업하고(가능하면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금상첨화이고), 해박한 성경지식과 감성을 터치하는 쫀득쫀득한 설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담임목사를 선호한다. 그 이면에는 어차피 구원받았으니까, 기왕이면 럭셔리한 건물과 편의시설이 좋은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똑같은 헌금내고 신앙생활하면서 좋은 혜택을 누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성경을 지식으로 가르치면서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요구하는 목회자들에게 신앙을 배운다면, 당신이 얻을 것을 목회자가 전수한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우리네 목회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교회에서 해왔던 예배의식과 갖가지 신앙행위를 반복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며, 졸업 후에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신학교에서 배운 성경지식과 신학지식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성경지식과 신학지식을 배우고 싶다면 굳이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교회에서 시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해박한 성경지식을 잘 가르치는 목회자가 널려 있으며, 누구나 사이버 신학교에 입학해서 유명한 신학박사 교수에게 신학을 배우는 게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컴퓨터에 앉아있기 싫다면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기만 해도 되는데, 굳이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가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죄다 성경지식과 신학지식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 부류의 목회자는 다르다. 두 번째 부류의 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내려와서 제자들에게 성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치셨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웠던 사도들은, 예수님이 말하시고 행하셨던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을 체험한 것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입교하여 사도들에게 양육을 받았던 제자들도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음은 물론이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시기는 AD60년 어간이다.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하나 둘씩 이 땅을 떠나가자 기록으로 남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끝나고,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믿고 나서 세상은 바뀌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점점 교회건물이 럭셔리해지고, 눈에 보이는 예배의식과 종교행사 그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기도가 사라진 교회에 하나님이 떠나시고 나자, 하나님을 경험한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독점하면서, 그들만이 알게 된 성경지식을 가지고 무지한 교인들을 자신의 뜻대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성경이 각종 언어로 번역되어 인쇄되어 책으로 편찬되어서, 일반 교인들도 성경을 소유하고 성경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교회에는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만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현대교회에 이르렀다. 아무도 하나님을 경험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험한 교회지도자는 사도들과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에서 양육 받은 제자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목회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위의 두 구절은 현대교회에서 박제된 구절이다. 증인이란 성령이 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표적은,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가르치는 교회지도자가 될 것이다. 필자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필자를 드러내고 영성학교를 홍보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기적과 이적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지도자들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을 전수해줄 수 있다. 예수님이 그러했으며 사도들이 그러했고, 사도에게서 양육을 받은 제자들도 자신의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그들은 성경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을 가르치고 제자를 양육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런 교회지도자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말을 흘려보내고 지금의 신앙생활을 반복하기를 고집한다면, 기껏해야 당신의 담임목사가 지닌 성경지식과 그들이 행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배울 뿐이다. 스승이 성령의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제자들을 성령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성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면, 성령을 만나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자기 의와 자기만족으로 삼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전철을 밟아서 지옥의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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