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06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안개와 함께 춤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안개와 함께 춤을 납빛으로 가라앉은 드넓은 바다 저편에 화물선 한 척이 유유하게 떠 있다. 바닷가에는 이따금씩 짙은 안개가 흐른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옥계해변에 작은 단독 주택을 사서 그곳에 십사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홀로 고독을 견디며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그에게 호기심이 일어 바닷가 까페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가 흔쾌하게 응했다. ​“어떻게 적막한 옥계 해변에 자리를 잡았습니까?”​내가 묻기 시작했다.​“도시가 싫었죠. 그래서 한적한 옥계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삼십평짜리 작은 집을 샀죠. 가격도 얼마 되지 않아요. 서울의 아파트를 처분하니까 돈이 남아돌아요. 경험이 없으니까 농사지을 밭은 사지 않았어요.”​“노년의 긴긴 시간을 어떻..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한 승려의 떠나간 자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한 승려의 떠나간 자리 한 젊은 의사가 내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한 스님의 죽음을 지켜 보았다는 것이다. 유명세 탓인지 권력가 부자등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한다는 것이다.​젊은 의사는 그렇게 대단한 스님이 정작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아프다고 소리치고 간호사나 의사들을 못살게 굴고 삶에 애착을 가지다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것이다. 평생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진리를 설법하고 득도했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고독을 벗 삼아 산 속에 살면서 무소유를 주장하던 그 스님은 암이 찾아오자 자신이 죽으면 관도 사용하지 말고 그냥 화장해 줄 것을 유언했었다. 그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영혼이 바라는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게 나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게 나다 자라면서 나는 위축이 되고 주눅 든 적이 많았다.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별종의 인간 같았다. 어려서 공부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대학을 나온 여자들만 보면 부러워하면서 움츠러들었다. 회사원인 아버지도 삶에 찌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밤에 마시는 소주잔에 눈물을 타서 마셨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하게 뒤틀린 성격이 형성됐던 것 같다. 나는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쳤을 때 인내하고 속으로 삭이지 못했다. 불만을 터뜨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덤벼들기도 했다. 수없이 자초한 매를 맞아왔다. 나이 들어 돌이켜 보면 참 미숙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어리석은 짓이 많았다.​이십대 중반 육군 중위 때 장교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가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내가 미래의 신문기사를 봤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내가 미래의 신문기사를 봤다 아침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다가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여보 조선일보에 기사가 났는데 한우물 정수기 회사가 매출이 일조원이래. 물을 해외에도 수출하고 말이야. 준재벌급이래. 강 선생님이 성공하셨네. 그렇게 물에 미쳐 계시더니.”​고교 은사가 경영하는 회사였다. 선생님은 어느날 부터 물에 미쳤다. 급기야 선생님은 사표를 내고 안암동 개천가의 허름한 작은 공간을 빌려 정수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선생님을 모두 말렸다. 심지어 부인까지 사업을 할 거면 안 살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갔다. 물에 미친 선생님은 외고집으로 그 길을 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속칭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항상 잘 삐진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항상 잘 삐진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내 스스로 지옥에 빠져들어 허우적 거렸다. 왜 나라는 인간은 그랬을까.​군검사로 있을 때였다. 한 변호사를 볼 때마다 내 심사가 편치 않았다. 그가 잘난척 하는 것 같아보였고 동시에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그가 나와 같이 근무하는 법무장교들을 음식점으로 초청했다. 나는 거기 가지 않았다. 청탁하는 자리를 아예 거절한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거절이라기 보다는 혼자 잘난 척 했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음날 선배장교가 나를 불러 한마디 했다.​“어제 회식하는 자리에서 그 선배가 너를 한번 되게 혼내주라고 하더라. 두들겨 패주래.”​그 말에 나는 속으로 ‘내가 왜 맞아야 해?’라고 하면서 분노가 치밀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잡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잡담 삼십년 고교 선배로부터 들었던 말이 있었다. 월급쟁이였던 그는 약간의 돈만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밥을 사면서 그들의 철학을 들어보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우연히 만나거나 평범해도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외국을 보면 많은 돈을 내고 식사를 한끼 같이 하면서 저명인사에게 한마디 얻어들으려고 하는 이벤트도 있는 것 같았다.​예전의 수행승들의 글을 보면 깨달음의 말 한마디를 얻기 위해 수 백리 수 천리를 걸어서 현자를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며칠 전 서너 명의 그런 분들의 점심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마음공부를 한 분도 있고 목사도 있고 철학을 한 전직 법원장도 있었다. 동해에서 기차를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부자 팔자는 따로 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부자 팔자는 따로 있다 젊은 시절 한동안 아내가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화가 났다. 누군들 그걸 모를까.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카피가 유행하고 있었다. 책방에는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을 보면 순간순간 주식시세를 살폈다. 땅을 보러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부자도 가난도 상속이 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긴 노년은 가난과 적막이었다. 나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없는 내 주제를 진작에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사십대 무렵 내가 아는 부자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와서 교수를 하는 놈이 나한테 와서 돈버는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재벌 회장은 행복할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재벌 회장은 행복할까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회장을 이십여년간 개인비서로 수행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총명하고 자물쇠를 채운 듯 입이 무거운 엘리트였다. 신중하고 빈틈이 없었다. 야망이나 욕심도 스스로 자제할 정도로 인내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회장이 그를 수십년 측근에 두었을 것이다.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 호기심에 물어보았다.​“모셨던 회장님의 장점을 얘기해 줄 수 있어?”​그는 잠시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말이 없는 분이었지. 그리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분이었어.”​“삶의 태도는 어땠어?”​“내가 보기에는 은둔형이었어. 회사로 나오지 않고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셨어. 일도 한밤중에 하셨어. 내가 집으로 가서 명령을 받아 오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는 모두 인생 감옥에 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는 모두 인생 감옥에 있다. 실버타운에서 여러 종류의 노인을 만났다. 왕년에 잘 살았고 경찰을 했고 뭘했고 해서 싸우는 수가 있다. 과거 정권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분이 있다. 팔십대가 넘은 지금까지 에너지가 왕성한 것 같다. 왕년의 경력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동향을 주변 사람들의 단톡방에라도 올려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남없이 우리들은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 평범한 노인인 점을 인정하고 과거에 묶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오랫동안 인생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왕자병에 걸려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착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번번이 실패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거지에게 행복을 물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거지에게 행복을 물었다. 거지나 노숙자, 폐지를 줏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불행의 상징으로 볼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을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서 살던 거지가 있었다. 눈이 하얗게 덮인 교도소로 그를 찾아갔었다. ​누명을 쓰고 그는 오랜 징역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지와 죄수’라는 우울한 색으로 그의 인생이 물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었느냐고 물었다.​“구걸을 하다가 천원짜리 지폐를 몇 장 얻을 때는 정말 재수좋은 날이었어요. 그 돈으로 창녀촌에 사는 여자친구를 불러내서 변두리 극장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함께 짜장면을 사 먹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요.”​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는 진한 행복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도 화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도 화가 어려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던 남자아이가 노인이 되어 그 꿈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나도 중학교 시절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를 보면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이차원의 평면에 입체감이 나는 삼차원의 산을 그렸다. 연필 선을 치면 꿈틀거리는 근육이 종이 위에 떠올랐다. 나는 머리속에 어떤 관념만 있을 뿐 묘사력이 빵점이었다.​어른이 되어 놀이를 하는 한 모임에서였다. 색연필과 동그랗고 작은 가죽 조각을 하나씩 나누어지면서 그 안에 이름과 간단한 그림을 그려 이름표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대부분이 알록달록 색칠해 가면서 예쁘게 만들었다. 나만 바보였다.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했다. 음악으로 치면 심한 음치고 운동으로 치면 몸치라고 할까. 그렇다고 머리속까지 그런 건 아닌 것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를 아늑하게 해 주는 것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를 아늑하게 해 주는 것 친구는 꼭 사람이어야만 할까. 개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다나 산을 친구로 하면 안 될까. 옛친구들이 점점 희미하게 사위어지는 걸 느끼면서 하는 요즈음 나의 생각이다. 허름한 차에 텐트를 싣고 혼자 떠돌아다니는 고교동기가 있다. 바닷가나 강가에 작은 텐트를 치고 혼자 산다. 더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 그가 좋아하는 바다나 강이 친구인 것 같다. 그는 텐트 안에서 파도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을 때 아늑하고 충만하고 투명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년 전 쯤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혼자 지리산 깊숙한 마을로 들어가 십이년째 참선을 하며 수행을 하는 수필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호기심에 만남을 청했더니 인연이 됐다. 아직 똥통이 있는 퇴락한 산골집..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종교보다 강한 밥 한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종교보다 강한 밥 한끼 나는 상대방에게 날을 세우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법정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의 사무실까지 쳐들어와 내게 따지고 있는 것이다.​그들은 우리 쪽을 마귀로 간주했다. 우리편도 그들을 악마로 여겼다. 마귀를 대리하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마귀라고 했다. 이단이라고 불리는 종교단체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었다. 돌과 돌이 부딪쳐 푸른 불꽃을 튀기고 증오가 극에 달해 있었다.​변호사인 나는 법 저울로 중심을 잡아야 했다. 종교전쟁에 앞선 투사가 아니었다. 대한민국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썩은 나무를 신으로 모셔도 법은 개입하지 않는다. 법의 밥을 먹고 사는 나는 그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단인지 아닌지는 변호사업무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이단 교주라는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아홉살 손자가 엉뚱한 데가 있다. 엄마아빠가 잠들어 있는 새벽 여섯시쯤 몰래 일어나 어둠컴컴한 방으로 들어가 뭔가를 뒤지더라는 것이다. 엄마가 일어나 살펴보니까 숙제로 내 준 문제의 답안지를 찾더라는 것이다. 은밀한 범죄 시도가 미수에 그쳤다. 엄마는 그 다음부터 답지를 머리에 베고 잔다고 했다. 아내는 손자가 도대체 친가나 외가의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깊은 마음속 오지에 달라붙었던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홉살 때 내가 그런 적이 있었다. 다음날 풀어야 할 문제의 답안지를 미리보고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비밀리에 연필 자국을 내 놓았다. 그러다 막상 문제를 풀 때 보니까 그 표시가 깜쪽 같이 없어져 있었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보조 프로그램 같은 유전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보조 프로그램 같은 유전자 수십년 동안 대치동에서 입시를 지도해온 일타강사출신 부자 회장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명문대학은 학원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아버지 엄마의 고등학교때 성적이나 아이큐검사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자기들은 공부를 못해놓고 아이는 닥달하는 부모를 보면 이해할 수 없어요. 다 유전자에 정해져 있는 건데.”​수십년 대입 전문가인 그의 의견이 일리가 있었다. 좋은 대학도 물려받은 유전자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소년일 때 선생님들은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하면 할 수 있다’라는 표어를 주면서 우리들을 몰아쳤었다. 돌이켜 보면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 것 같기도 하다.​그러면 공부 유전자만 좋으면 되는 건가. 나는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