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Essay 1399 ☞ 혜종(惠宗)의 왕비 ① 가문이 한미(寒微)하고 주변에 후견 세력도 없는 맏아들 무(武 912/943/945)는 자랄수록 기개가 뛰어나고 지력과 용맹을 겸비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이에 왕건(王建)은 그를 태자로 낙점한 후 무장 세력의 대표 박술희(朴述希)에게 후견하게 하고 병부령(兵部令) 임희(林曦)의 딸을 태자빈으로 삼은 외에도 막강한 호족 세력인 개국공신 왕규(王規)의 딸을 둘째 비로 청주(淸州)지역 호족 김긍률(金兢律)의 딸을 셋째 비로 삼아 뒤를 튼튼히 해 주었다. 그런데 사실 왕규는 왕건에게도 15비와 16비로 딸을 바쳤으니 태조와 혜종의 장인이 되고 김긍률은 다른 딸을 3대 정종에게도 바쳤으니 혜종(惠宗)과 정종(定宗 923/945/949)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