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자신의 존재의 구원을 인내로 이루라

Joyfule 2024. 3. 10. 23:37


   자신의 존재의 구원을 인내로 이루라(롬8:23-25)



 실존적인 문제해결을 복이라고 말하므로 기독교는 쇠망해 갑니다.

미국 목사들이 미국교회는 망하는데 200년이나 걸렸는데

한국교회가 망하는 데는 30년 밖에 안 걸렸다고 놀라워하더군요.

이제 한국교회라는 말은 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살아 있거나 죽은 목사 몇몇이 한국교회의 대표자였다 하는 말이

생긴 시점부터 이미 한국교회는 목사들의 말잔치에 놀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느 날 교회가 아이들의 꽃동산이 되었다고 하니 한 목사님이 웃더라고요.

제 생각으로는 한국교회는 회생자체가 힘이 들 정도로 너무 빗나갔습니다.

이런 저런 구설수나 교회의 사유화나 세습 등이 문제가 아니라

전파되는 복음의 내용이 성경의 교회를 구현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전을 짓고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일 년 일차씩 제사만 성공하면 만사가 오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소속이 바뀌고 주께서 주장하시고 나의 성향이 영으로

기울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향해 집중하면 그 신앙은 게임 오버입니다.

 

Q.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증거가 무엇인가요?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

 

A. 몸의 속량 곧 몸의 구속을 위하여 탄식하며 신음하는 겁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자세히 보면 오순절 성령이 오신 목적이 다윗과 같이 항상

주님을 앞에 모시고 보좌에 앉으신 주의 이름을 호소하므로 구원을 받는 겁니다(행2장)

뿐만 아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첫 열매이시며 초태생이십니다. 곧 이른 비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첫 열매와 성령에 의해 우리가 한 단에 함께 묶여 있습니다.

이를 두고 거듭났다 의롭게 되었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우리는 속으로 주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며 늘 탄식합니다.

양자될 것 곧 아들의 신분확립 때문에 몸의 구속을 기다리면서 탄식하는 겁니다.

진리 안에서는 결코 stop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가 없습니다.

 

로마서 8:9-10절은 우리의 영적 구원을 그리고 11절은 신령체 구원을 말씀합니다.

이 신령체 구원이 몸의 구속 곧 속량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요1: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십니다.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우리는 그의

영으로 양자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은 언제나 현재적이며 실제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와 아들의 영으로

양자가 되는 경우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는 죄를 지은 죄인의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아니라 양식만 얻어먹는 품꾼이면 족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구나 하면서 완전한 아들로 인정하셨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시편 23편은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마지막에 가서 여호와의 집에 내가 영원히 거하리라고 노래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6)

하나님은 우리를 단번에 완전히 수용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처음부터 그 사랑을 다 수용할 수 없습니다.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세상의 빛이 되어 빛과 어둠을 나누어 어둠에

빛을 비추고 징조와 사시의 계절과 날과 해(창1:14)를 단계적으로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신의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 가는 것이 바로 몸의 구속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나의 죽은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이와 같은 영적인 교환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현재적이요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몸의 속량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계속 넘겨주고 계속 속량을 받는 겁니다.

몸의 속량을 받는 사람이 신령체 구원에 참예합니다.

그것이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고전15:44)

주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임하시는 재림의 때에는 심는 것이 없습니다.

눈 깜빡할 순간에 다 홀연히 변화가 됩니다. 육의 몸을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내주 역사에 의해 일어나는 신진대사입니다.  

이와 같은 구원은 우리가 주님께 가거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이르도록 계속됩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는 육의 몸은 항상 십자가에 넘기고 구원의 몸 곧

신령한 몸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홀연히 변화 하리니 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 하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지금 성령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것은 종(種)의 부활입니다.

아담 안에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영적 몸이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형태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그 날에 육적인 몸을 벗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신령한 몸을 입는 것입니다(고후5:1)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씨(요일3:9)가 있고,

그 씨가 끝내 하나님의 형상의 형체를 우리 안에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죽음의 두려움만 이겨도 웬만한 병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시기, 욕심, 고집, 분노를 일으켜서 신경계통의 고장을 초래합니다.

 

Q.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A. 구원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심은 그 믿음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믿음으로 아들을 구해서 사무엘을 얻었고,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구해서 멸망당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상황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존재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존재 구원을 원한다면 당연히 항상 주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존재 구원이 되면 상황 구원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갈 겁니다.

그러나 사단이 다스리는 이 땅에 육신이 사는 동안은 완전한

상황 구원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토피아는 환상일 뿐입니다.

 

Q. 만일 우리가 존재 구원을 바라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5)

 

A. 참음 곧 견디는 것, 인내이며 기다림입니다.

세상에 인내가 없이 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본적인 믿음의 기초 위에 진리의 성령을 따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수직으로 하나님의 집을 건설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 경우를 말씀 드리잖아요. 그리스도 안에 기본구원을 확립하는데

25년이 걸렸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주 하시는 주님이 영광 나라 임금이신 만왕의

왕이 되심을 믿고 주의 이름을 친근하고 간절하게 부르는데 25년이 걸렸다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므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 중간에 석회암 덩어리만 있는 광야뿐인가 결코 그렇지만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은혜와 진리로 의도 맛보고 평강도 맛보고 기쁨도 맛보게 하십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별별 표적과 꿈과 환상 신유 등의 유치함도 보여 주셨지만

하나님께서 존재의 구원으로 부르셨기에 그 약속을 따라 나아가가는 것이

육신으로 매우 힘들지만 영은 항상 즐거워서 그 길을 걷다보니 벌써 50년입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는 일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기쁨을 전제로 앓는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 닿도록 크게 기도하고 크게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엄청나게 크게 불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하시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신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