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 허후남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 허후남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느냐고 뜬금없이 너는 내게 물었다 사랑을 믿느냐고 온전한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건성으로 대답해놓고 오래전에 떠난 사람 하나 떠올리며 창가에 둥둥 뜬 바다만 보았다 어디에도 담금질하지 못하는 생경한 기억처럼 어긋나는 내 사랑도 이..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24
밤 강물이여 - 나희덕 밤 강물이여 - 나희덕 낯선 물결이 반짝인다 바로 눈앞에서, 또는 아주 먼 곳에서 몇시간째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누가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수면 위로 떠올라다가 어디론가 흘러가는 기억의 포말들 밤 강물이여 여기, 나를, 내려놓는다 비로소 그를 미워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그를 용서할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23
구부러진 길 - 이준관 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22
가장 낮은 자리 - 차윤환 가장 낮은 자리 - 차윤환 으뜸 되기 힘쓰지 말고 버금 되기도 사모치 말라 으뜸은 교만의 상징이요 버금은 자랑의 간판이라니 셋째와 넷째 다섯째와 여섯째 일곱째까지라도 양보하라 한 계단씩 오를수록 저 아래 땅끝은 까마득하고 그대 마음 더 큰 어지러움의 지배를 받으리니 온갖 허욕의 구름 위에..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21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20
어떤 적막 - 정현종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9
에너지 보존 법칙 - 차윤환 에너지 보존 법칙 - 차윤환 산이 겨울 빗장을 푼다 열역학 제1법칙을 넘어서지 못하는 얼음 박혔던 골짜기가 물소리로 일어서면 볕은 바늘 침으로 땅을 찔러대고 기슭에 잠들었던 씨앗들이 자다가 깬 오줌싸개 아이처럼 보챈다 씨눈에 새긴 모태의 근원을 한두 눈금씩 흉내 내어 베껴나가면 간지럼 타..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8
연(鳶) - 김승택 연(鳶) - 김승택 너와 나의 인연은 가는 실오라기 하나뿐 적당한 바람만 있으면 가볍게 날아오르는 넌 이 녀석 저 녀석 보이는 데로 꼬리를 흔들고 그러는 네가 미워 얼레를 풀면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 사랑의 기억 그러다가 깜짝 놀라 얼레를 감으면 찡긋 윙크하며 다시 비상하는 너의 미소 언제나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7
정채봉 - 내 가슴 속 램프 중에서 첫 마음 정채봉 - 내 가슴 속 램프 중에서 첫 마음 1월 1일 아침에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처음 펼치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함께 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6
저울손 - 차윤환 저울손 - 차윤환 쉽게 밥을 먹고 곧 잊어버려도 한 번도 탓하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쌀알처럼 단단하게 여물기만을 기다리시며 아침저녁으로 무게를 달아오신 아버지. 여든여덟(米) 번을 다 달지 못하시고 장마로 불어난 물살에 떠밀려 발목을 삐셨다. 부어오른 아버지의 발자국을 딛고 나는 낡은 우산..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5
설날 아침에 - 김남주 설날 아침에 - 김남주 눈이 내린다 싸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4
철길에 서면 그리움이 보인다 - 신형식 철길에 서면 그리움이 보인다 - 신형식 아직도 아른거리는 것들을 모두 추억으로 만들고 마는 철길에 서면 그리움은 종착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 사람들이 오고 가던 세상 한 가운데서 기적소리는 아직도 그리 서성이고 다 쓰러져 가는 역전 앞 가게에서 박카스 한 병 사서 들이키고 나..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3
못다 부른 그리움 - 차윤환 못다 부른 그리움 - 차윤환 눈발이 거세어지면 비탈길은 발이 묶일 거야 꽃이 된 아이들은 손 시린 줄도 모르고 즐겁겠지만 어른들이야 어디 빗장 지르고 살 일 한두 가지 이던가 그어 놓은 잣대에 스스로 갇히는 모순 삭이려면 시침과 분침이 겹치는 시각에 떡갈나무 숲으로 가 보는 거야 네 것 내 것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2
비망록 - 문정희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1
귀소증(歸巢症) - 차윤환 귀소증(歸巢症) - 차윤환 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섶다리 쪽으로 가는 동안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옷깃 스치는 일이 하도 수월해서 덩치보다 눈이 더 큰 치어(稚魚)들이 개여울의 급한 물살도 수월하게 넘는다. 해질 무렵 늙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말아 올려 수척한 조각달이 다리 난간에 걸..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1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