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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원훈들의 선택은 옳고 정당했다

사설] 대한민국 건국 원훈들의 선택은 옳고 정당했다 입력 : 2007.08.14 22:41 오늘은 제62주년 광복절임과 동시에 제59주년 건국절이다. 8월 15일은 日帝일제로부터 해방된 해방의 날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적 탄생을 세계에 알린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 8·15를 광복절로 아는 국민은 86.5%에 달했지만 대한민국 건국일로 아는 국민은 32%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은 저절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해방 이후 이 땅에선 좌우 합작과 단독 정부 반대론이 오히려 우세했다. 동서 냉전이 막 시작된 그때의 상황에서 좌우 합작은 결국 어느 한쪽이 힘으로 다른 쪽을 제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무력은 좌파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以北이북의 좌파가 공산주의 단독 정부를 준비하..

이승만 정신을 알면 국가정체성이 보인다

 이승만 정신을 알면 국가정체성이 보인다 최 응 표 ( 뉴욕 에서 ) 결론부터 말해서 국가정체성 회복은 이승만의 건국정신과 호국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공산집단과 자유진영의 대결장이 된 살벌했던 해방정국(解放政局)이라는 우리만의 특수 상황 속에서 탄생한 대한민국 고난의 역사와 2차 대전 후 최 고속 성장과 富(부)를 창출하면서 세계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성공한 대한민국의 현재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승만 정신이란 무엇인가. 소련의 대일전(對日戰)과 함께 계획된 한반도 공산화 전략이라는 스탙린의 음모를 폭로하고 차단하면서 공산세력을 제압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투철한 건국정신,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의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정신으로 ..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운동을 전개하자.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운동을 전개하자. 광복 60주년과 건국대통령 崔 震 (호남대교수/前駐中 公使) 2005년은 1945년 해방된 때로부터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해방은 오늘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가능케 한 전환점이었고, 이 해방을 가져오기 위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해서 많은 독립운동 단체와 인사들이 자기 전 인생을 희생하는 독립투쟁을 해왔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前文)속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도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국내외에 있었지만 27년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한 조직은 대한민국임시정부밖에 없다. 또한 그 정통성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당시 2천만 우리 민족중 거의 모든..

자유와 번영의 울타리를 만든 분은 李承晩 건국 대통령입니다!

 자유와 번영의 울타리를 만든 분은 李承晩 건국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 建國(건국) 60주년을 맞아 雩南(우남) 애국상을 제정, 제1회 수상자로 국민행동본부(단체)와 李度珩(이도형) 한국논단 대표(개인)를 선정하였습니다. 8월14일 오후2시 정동교회 문화재예배당에서 시상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사랑회 1. 雩南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던 위대한 독립투사이자 대한민국을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세운 ‘건국의 아버지’이며 우리의 생명줄인 韓美(한미)동맹의 건설자입니다. 李 대통령의 농지개혁과 교육개혁이 없었더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6.25 전란중에도 읍면 단위까지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東海(동해)에 평화선을 선포하여 독도를 지켜냈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동상 건립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동상 건립 ㅡ 건국 60주년 맞아 남산 자유센터에 ㅡ 임 광 수 ㅣ 한국자유총연맹, 홍보매체본부장 대한민국 건국60주년을 맞아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동상을 남산 자유센터에 세우는 사업이 한국자유총연맹(총재 권정달)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한국자유총연맹(아시아민족반공연맹-1954)을 창설한 인물이 이승만 박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자유총연맹(자유센터) 정문 옆에 세워지게 될 이승만 박사 동상건립 사업은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65만 회원의 성금을 기본재원(시드머니)으로 하여 각계이 지원 협력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 동상 건립사업 일정은 부지 공사에 따르는 행정절차가 완료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승현 20세기 초중반 동서양에서 가장 뛰어났던 인물이 이승만이다. 일본 군국주의 위험성을 제일먼저 알린 사람도 이승만이었고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도 그당시 이승만보다 더 꿰차고 있었던 사람 없었다. 광복후 강대국들은 한국을 신탁통치할려고 하였고, 처음에 반탁했다가 스탈린의 지령이 떨어지자 북한공산당시키들도 신탁에 찬성한 마당에 이승만은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반탁운동을 끝까지 벌여 남한만이라도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여 유엔으로부터 공정한 선거라는 인정을 받게 되자, 미국은 더 이상 신탁통치에 대한 명분을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주국가든 공산국가든 민족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주장했던 김구와 결별하게 되었고, 김구는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암살자의 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바로 알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바로 알자!탄신 134돌: 이승만 박사는 한민족이 배출한 유일한 영웅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오늘은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탄생한지 134돌이 되는 기념일이다. 이승만 박사는 평생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다가 해방을 맞아 조국이 공산화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 날 이승만 박사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좋지가 않다. 그것은 북쪽 공산주의자들의 악의적이고 날조된 공격과 이에 동조하는 남한 친북좌익반역세력의 무차별적 공격 그리고 자신들의 '민주화의거' 또는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4.19세대와 5.16세력이 동시에 이승만 박사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승만 박사의 건국 공로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공로가 좌우합작으로 무..

광화문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

광화문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이룩한 성공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金文洙(경기도지사) 공무원 교육을 할 때마다 “대한민국을 누가 건국했는지 아느냐”고 물어본다. 예를 들어 ①단군 ②이성계 ③이승만. 이렇게 얘기해도 ‘이승만’이라는 정답을 대는 사람은 100명에 5명 정도다. 이성계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2명, 단군도 5명쯤 된다. 대다수는 침묵이다. 반면 “북한을 누가 건국했느냐”고 물으면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20% 이상이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 역사를 모르느냐”고 물으면, “해방 이후 역사는 시험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최근 “광화문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인가”라고 했더니 ..

金春秋와 李承晩-민족사 最高의 외교관

金春秋와 李承晩-민족사 最高의 외교관 민족을 만든 신라의 삼국통일과 국민국가를 만든 대한민국 建國을 긍정해야 한국인들은 온전한 人格을 갖출 수 있다. 趙甲濟 우리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을 뽑는다면 나는 新羅에 의한 삼국통일과 李承晩이 주도한 대한민국 建國을 꼽을 것이다. 前者는 최초의 민족통일 국가를 건설, 韓民族이란 공동체를 만들고 한반도를 그 활동공간으로 규정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後者는 韓民族이 백성이 아닌 국민으로서 국가운영에 主權者로 참여하여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前者가 없었으면 後者도 없었으니 굳이 등수를 매긴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사 제1의 사건이 되고 삼국통일의 세 영웅-金春秋, 金庾信, 文武王이 민족사 제1인물이 된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建國에는 몇 가..

건국대통령을 홀대하는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을 홀대하는 대한민국 KPANEWS (기사입력: 2010/07/19 21:41) (뉴욕-KPA 한창섭) 만고풍상 끝에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건국에 성공하여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서거한지가 45년이 되었지만 한국민은 아직도 그의 공로는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홀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죽은 날 보다 태어난 날을 기념하지만 한국에서는 살아있을 때는 태어난 날이 중요하지만 죽은 후에는 오히려 죽은 날을 더 중요시하고 기념하는 것이 통례인 것 같다.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을 기념하여 공휴일로 정했고 최근에는 민권운동가 마킨 루터 킹 목사의 생이를 공휴일로 법제화했다. 한국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유교의 전통 때문인지 생일은 기념하지 ..

“귀국길 열어주오” 이역에 묻힌 눈물의 호소

“귀국길 열어주오” 이역에 묻힌 눈물의 호소 평생친구 밴플리트 장군에 보낸 편지 12통 입수 ‘언젠가 내 행동이 진실하고 정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겁니다.’ ‘한사코 고국으로 돌아가려고만 합니다. 항상 그 생각뿐입니다.’ 2, 3주 머물다가 귀국하리라던 하와이 망명생활은 기약이 없었다. 그는 몸의 심장병 등과 마음의 향수병에 시달리다가 5년여 만에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부정부패와 독재에 국민이 등을 돌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쓸쓸한 황혼이었다. 세계일보가 1960년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심경을 보여주는 편지 12통을 12일(현지시간) 미국 ◆4·19혁명과 하와이 망명 1960년 4월1일과 5월11일 편지에서 이 대통령 내외 주소가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바뀌었다...

6·25와 한미동맹

6·25와 한미동맹주한미군 주둔 법적근거 마련 ▲6·25와 주한미군 6·25 때 미국은 1개 야전군, 3개 군단, 8개 보병사단, 1개 해병사단, 28개 보병연대, 54개 포병대대, 8개 기갑대대를 투입해 전쟁을 치렀다. 한반도에 전개된 미군은 일본과 하와이·오키나와·본토에서 동원돼 한국에 투입됐다. 미국은 1950년 7월 1일 스미스부대를 파한한 이래 그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51년 6월 말 미지상군은 25만여 명, 52년 6월 말에는 26만여 명, 휴전 때는 30여만 명에 달했다. 이때 미군은 8군을 비롯해 3개 군단(1·9·10군단), 8개 사단(2·3·7·24·25·40·45·1해병사단)이 한국에 주둔했다. 6·25에 참전한 미군은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후 철수하기 시작했다. 주..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없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없다. 2009. 1. 20. 정창인 어느 집안에 훌륭한 사람이 배출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 부모가 있었기에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모도 그 선조가 있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고 그 자식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제사를 올린다. 결코 조상의 공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상에 대한 경배는 왕조에서도 행한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에서는 종묘를 설치하여 태조 이성계를 개국의 왕으로 모신다. 조선왕조에서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 배출되었다고 하여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열지 않았다면 결코 훌륭한 왕으로 배출될 수 없었을 것..

이승만이 반민특위 방해했다? (지만원)

이승만이 반민특위 방해했다? (지만원) 좌익들은 역사를 분석적 시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대부분의 국민에게 “해방전후사의인식”이라는 좌익서적 내용을 선전하고 있다. 좌익들은 이승만이 나쁜 사람, 김구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선전한다. 요사이 TV에는 시시각각 검은 테를 쓴 음흉해 보이는 김구의 얼굴을 억지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승만이 왜 나쁘냐” 이렇게 물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설립된 빈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여 친일파 청산을 못하게 했지 않느냐”, 이렇게 대답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시정해 준다. 아 래 해방직전부터 한국사회는 빨갱이들의 세상이 되었다. 1945년 일본 천황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자 그 다음날인 8.16일에 공산당 여운..

8.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차별 없는 시대’ 실현

8.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차별 없는 시대’ 실현 지주-소작관계 청산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뿌리내려 농지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은 근대화 출범 초기부터 지주-소작인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균질한 사회로 출발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첨예한 계급 갈등의 소지를 미래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농지개혁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성과다. 월간조선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의 경제 리더십(8)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업적을 논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토지개혁이다. 현대사 전문가들은 건국 직후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시행된 토지개혁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평을 내놓을 정도다. 조선 500년을 지배했던 유교는 물질이나 돈을 비천한 것..